여ㆍ야 칼자루 바꿔 쥐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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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국이 다시 박종철군사건의 태풍에 휩싸였다. 범인의 은폐·조작이라는 국가기관의 공신력 위기, 이번 사건이 여권 내부의 정치질서와 정치일정에 미칠 영향등을 여야는 다같이 심각히 따져보고 있다. 민주당 통일정권 시비로 여=공세, 야=수세였던 상황은 이번 사건으로 완전히 역전됐다. 여권이 속전속결로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반면 야권은 강력한 파상공세로 개헌정국으로의 복귀까지 노리고 있다.

<신뢰실추가 큰고민>
○…박종철군 사건 조작은6·10전당대회를 앞둔 민정당에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의 통일정강과 김영삼총재의 취임사로 공세를 취했던 입장이 이제 꼼짝없이 수세로 몰렸고 이번사건에 따른 정부·여당의 신뢰 실추와 의심받게된 도덕성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22일상오 수원에서 열린 경기도지부 개편대회는 당장 열기가 떨어져 지난 15일 개편대회이래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난무하던 민주당과 김영삼총재에 대한 원색적 공격이 뚝 끊겼고 많은 의원들이『이시점에서 무슨 개편대회냐는 국민들의 비아냥소리가 머리에 맴돌아 당원들의 함성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않았다』고 실토.

<노대표 노총리에전화>
○…민정당은 22일 상오 당직자회의에서 정부측, 특히 수사당국에 대한 성토와 함께 발표과정에서 당이 소외된데 대해 그야말로 흥분상태였다는 후문.
이날하오의 당직자회의에서는 노태우대표가 직접 노신영국무총리에게 전화를 걸어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는데, 이는 노대표의 입장이나 성격상 극히 이례적인 일로 민정당의 비장한 분위기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민정당은 이 사건이 6·10전당대회에 차질을 주지않도록 하기위해「신속·단호히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이를 정부측에 전달.
민정당은 이번 사건이 잘못 확대될때 가져올 정치적부담을 정부측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예컨대 민정당은 4·13조치와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6·10전당대회가 축제분위기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국민들로부터「냉소」의 대상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절박감 같은것을 느끼고 있다.
하물며 전당대회가 초상집옆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격으로 비유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인식이다.
때문에『전당대회에 영향을 주어서도 안되고 줄수도 없게 하겠다』(이춘구사무총장)고 다짐하고 있지만 대통령후보로 선출될 입장인 노대표로서는 고충이 한두가지가 아니며 그래서 그의 적극적인 수습노력이 특히 주목을 끈다.

<용서비는게 최선책>
○…구체적인 수습 방안에관해 민정당 당직자들간에는 거의 의견 접근이 이루어져있는 상태.
우선 고문치사 자체를 은폐·조작한것이 아닌만큼 진상을 빨리 속시원히 밝히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란 생각이다.
관련자들에 대한 단호한 형사처벌과 아울러「최대한」의 정치적 책임이 추궁되어야 한다고 보고있다. 그래서 평소여권풍토에서는 나오기 어러운 장관등에 대한 인책문제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으며 여권의 정치구도를 바꿀만한 선의 인사개편도 각오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민정당은 이 문제를 정당간의 쟁점으로 부각시키는데는 극히 부정적이어서 야당이 요구하는 임시국회는 일단 열지않고『수사가진행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국정조사권발동 요구도 거절할 방침이다. 민정당의 반대에도 불구, 야권의 공동소집으로 국회가 열릴 경우에대해서는 어차피 파행국회가될게 뻔한만큼 아예 불참하는 쪽이 낫다는 견해와 박군사건의 1차파동때처럼「인책후 단기국회」를 열어 적당히 매를 맞고 넘어가자는 주장이 엇갈려 있다.

<개헌정국 복귀노려>
○…4·13조치후 여권의 파상공세에 거의 속수무책이었던 민주당에 이번 사건이 대여공세의 더할수 없는「호재」임은 물론이다.
민주당은 통일정강등에 대한 여권의 시비나 원색적인 비난발언등을 4·13조치의 호도책이라고 보면서도 뾰족한대응수를 찾기 어려웠던 실정이었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전의 계기를 포착한셈이다.
민주당은 이 기회를 주도면밀히 이용,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 실종상태에 빠져있는 개헌정국을 원상회복한다는게 기본방침.
특히 민주당측은 이번 사건과정에서 가톨릭측의 정보확보외에도 공직사회내무로부터 제보가 있었다는 소문을 중시하고 이런현상이 권력의 누수현상이라는 추측도 하는등 대여투쟁에「자신감」을 되찾고있는 분위기다.
○…야당측은 이번사건을 계기로 우선 국회소집요구로 공세를 시작하고는 있지만 어느선까지 공세를 취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의론이 분분.
일부 의원들은 여권이 4·13조치를 철회할리 없고, 따라서 언젠가 일전이 불가피하다면 이번과 같은 호기를 놓치지말고 농성·단식등 강력한 장외투쟁까지 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김현규총무는『이번사건을 지나치게「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것보다 고문방법· 조작경위등을 밝혀내는 것이 급선무』라며『국정조사권 발동에 당력을 집중해야한다』고 역설.
민주당은 여당이 국회소집요구에는 응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데 만약 여당이 끝내 불응하면 우선 다른 야당과 제휴해 야권공동소집이라는 압력을 여당측에 가할 계획이다.
그러나 민주당내에는 이처럼 무언가 고조된 분위기」와는 달리 이렇게 나가다가는 결국 정치권 전체에「어두운 그림자」가 뒤덮이는 결과가 오지 않겠느냐는 불안한시각도 없지않다. 한 의원은 『상황이 여야가 계속 서로「강수」를 쓰도록 되어나가면 결국「천둥소리」가 나는것 아니냐』고 불안감을 표명했다.<박보균·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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