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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살처분 1445만 마리 ··· 황교안, AI재앙부터 수습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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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탄핵 정국으로 국정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재앙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지난달 16일 충북 음성군과 전남 해남군 농가의 가금류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한 달도 안 돼 전국으로 확산됐다. 14일 0시 현재 곧 매몰하는 378만 마리를 포함한 살처분 가금류는 1445만 마리에 이른다. 2003년 이후 9차례 발생한 AI 중 2014년(살처분 1396만 마리)을 뛰어넘는 최악의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3305만 마리가 살처분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전국 가금류 1억5504만 마리의 21%, 국민 1.5명에 한 마리꼴이다.

정부는 무능, 지자체는 허둥대고
AI 역대 최악, 방역 후진국 망신
서민 위해 총력 기울여 진압을

 AI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막심하다. 올 들어 주춤하던 신선 가금류 수출이 폭탄을 맞았고, 청정국 지위 유지도 어려워 보인다. 계란 값은 10~20% 뛰어 일부 지역에서는 ‘1인 1판’ 제한 판매를 시작했고, 빵·과자 제조 영세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가금류 조기 출하가 급증하면서 닭고기 도매가는 한 달 사이 20% 이상 떨어졌다. 익혀 먹으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광주광역시 ‘오리탕 거리’ 등에는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한다. AI가 서민 생활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AI 재앙은 전적으로 무능·무기력한 정부 책임이다. 국정 농단 정국에 매몰돼 초동 대응에 정신 줄을 놓다가 지난해 메르스 사태와 같은 대재앙을 자초했다. 초동 대응에 실패한 농림축산식품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 말 충남의 철새 분변에서 치사율이 높고 인체에도 위험한 것으로 알려진 H5N6형 바이러스가 검출됐는데도 “올해는 AI가 없다”며 안이하게 대응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16일 이번 재앙의 시발이 된 가금류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이틀 뒤에야 회의를 열었고, 황교안 총리도 9일 후에 의정부시를 방문한 뒤로 손을 놓았다. 방역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지방자치단체와의 공조도 무너졌다. 약발이 듣지 않는 소독약이 공급되는가 하면, 일부 지자체는 허둥대다가 허위로 방역 신고를 했다. 일시이동중지(standstill) 명령이 세 번 발동됐지만 여러 농가가 어겼고, 감염 사실을 알고도 출하하기도 했다.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먹통이 되는 사이 AI가 통제 불능으로 치달은 것이다.

 뒤늦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의지를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12일 첫 AI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총력 대응을 지시한 데 이어 어제도 중앙·지방정부 회의를 주재하며 상황을 챙겼다. 황 권한대행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달 AI 발생 두 시간 만에 철저 방역을 지시하고, 살처분에 자위대까지 동원한 리더십을 뼈아프게 되새기기 바란다. AI를 잡는 것이 서민을 챙기는 것이다. 황 권한대행 체제가 방역시스템을 정비하고 AI를 수습하는 리더십부터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