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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는 머리, 존 왓슨은 가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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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8 면

Picture shows: D.I. Lestrade (RUPERT GRAVES), Mary Watson (AMANDA ABBINGTON), John Watson (MARTIN FREEMAN), Mrs Hudson (UNA STUBBS), Mycroft Holmes (MARK GATISS), Sherlock Holmes (BENEDICT CUMBERBATCH) and Molly Hooper (LOUISE BREALEY).

Picture shows: D.I. Lestrade (RUPERT GRAVES)

Picture shows: John Watson (MARTIN FREEMAN)

Picture shows: Molly Hooper (LOUISE BREALEY)

Picture shows: Mycroft Holmes (MARK GATISS)

Picture shows: Sherlock Holmes (BENEDICT CUMBERBATCH)

Picture shows: Mary Watson (AMANDA ABBINGTON)

영국 드라마 ‘셜록’ 시즌4 중에서

기차로 두 시간 반 거리인 런던과 카디프를 오가던 두 이야기꾼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 셜록 홈즈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판’이 커질줄은 몰랐다. 런던의 명소 중에서도 명소랄 수 있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주연 배우가 프록 코트를 날리며 걷는 장면을 촬영할 때 무수한 이들이 주변을 오갔지만 누구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90분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영국 BBC 방송의 드라마 ‘셜록’이다.


2017년 1월 1일, 셜록이 다시 돌아온다. 2010년 첫 방송 이래 네 번째 시즌이다. 형식은 동일하다. 90분씩 3개의 에피소드다.


한창 촬영 중이던 지난 6월 이야기꾼인 작가 스티븐 모팻과 마크 게이티스, 그리고 셜록 홈즈역 베네딕트 컴버배치, 왓슨 박사 역의 마틴 프리먼 등을 만났다. 다국적 기자들이 함께한 인터뷰였다. 한국 기자로는 유일했다. 이들은 왓슨 부부에게 딸이 태어난다고 귀띔했다. 이번 시즌이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어두우면서도 희극적”이라고 했다. 언제는 안 그랬나 싶었는데, 정색하며 “이번 시즌이 가장 강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이티스는 “서사적(epic)”이라고 했다.


이런 얘기를 왜 이제야 쓰느냐고? 그동안 엠바고(보도통제)였다. 5개월 간 근질근질했던 입을 다물고 있느라 참으로 어려웠다. 이제 묵었지만 ‘새’ 얘기인 그네들의 말을 두 주연 배우를 중심으로 풀어놓는다.

‘셜록’ 시즌4 이미지컷

[“어머니가 퉁명스러워졌다고 한다”]


우선 컴버배치다. 첫 방영 전엔 무명 배우에 가까웠다. 업계에선 장래성 있는 독특한 배우란 평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첫 에피소드 이후, 어쩌면 채찍으로 시체를 미친 듯 내리치던 첫 등장 장면 이후, 그는 말 그대로 떴다. 최근엔 필모그래피를 따라잡는데도 숨 가쁠 정도로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스타가 됐다. 운명을 바꿔놓은 ‘셜록’을 두고 컴버배치는 “여전히 사랑한다. 나는 운이 좋은 배우”라고 말문을 열었다.


시즌 3으로부터 3년이 흘렀다.


“올 초에 크리스마스 스페셜(‘유령신부’)을 해서 그런지 그렇게 흘렀는지 몰랐다. 현대의 셜록과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셜록(유령신부의 배경이자 코난 도일 원작의 시대)을 모두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론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를 하고 돌아와 바로 다음날부터 대본을 외우고 촬영에 들어가야 해 쉽진 않았다. 오랫동안 셜록의 다양한 면을 탐구해온 나로선 그를 연기하는데 애정을 느낀다.”


유령신부는 빅토리아 시기의 살인사건에 대한 얘기다. 두 주역이 과거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았다. 극 막판엔 여전히 셜록의 사고 과정이었다는 게 드러났지만 말이다.


사실 원작에선 두 주역이 서로를 “홈즈” “왓슨”으로 부른다. 근엄한 빅토리아 시대 아닌가. 하지만 드라마에선 “셜록” “존”이라고 한다. 칭호부터 현대물이다.


유령신부의 배경이 빅토리아 시대라는 게 시즌 4에도 영향을 미치나.


“궁극적으로 그렇다. 현재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케이스를 떠올린 거니까. 왜 그랬는지 말할 수 없다. 뭔가 있긴 하다.”


시즌 4의 셜록을 규정한다면.


“고난을 겪고 도전도 받는다. ‘게임’ 측면에서 가장 치솟고, 영혼이란 면에서 가장 바닥까지 내려간다. 엄청난 고점과 저점이 교차한다. 셜록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드러날 게다.”


셜록이 중얼거렸다고 알려진 문구 중 가장 유명한 걸 두 개 꼽는다면 “아주 간단하네, 친애하는 왓슨(Elementary, my dear Watson)”과 “가자고 왓슨, 게임이 벌어지고 있어”(Come Watson, the game is afoot!)’다. 컴버배치가 쓴 바로 그 단어 ‘게임’이다.

이번엔 아이가 등장한다는데.


“통상적으로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과 달리 대한다. 더 이상 말을 못한다.”(극중 왓슨의 부인으로 나오고 실제로도 마틴 프리먼의 배우자인 아만다 아빙톤은 “대단히 셜록스러운 방식”이라고 거들었다)


과거 셜록을 오래 연기한 배우들은 실제 일상에서도 캐릭터의 영향으로 힘들어하곤 했다.


“때로 조급해진다. 어머니가 퉁명스러워졌다고 한 적도 있다. 좋은 점도 있다. 정신적 기민성이다. 사실 난 기억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를 연기할 때면 두뇌가 더 유연해지고 명민해진다고 느끼곤 한다. 대사량이 많으니.”


셜록은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천재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속적으로 난공불락인 영웅이라…지루하지 않나. 모든 에피소드가, 다른 이들이 그가 늘 최상이며 늘 옳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그네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과정일 테니까 말이다. 초기에 모팻에게 ‘셜록의 아킬레스건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모팻이 ‘그저 영리(brilliant)하기만 한 것’이라고 하더라. 그럴 듯했다. 배우로선 그러나 셜록에 대해 더 알아야했다. 빙하와 같은 얼음에 갇혀 있는 듯 했던 사람이 서서히 해동되며 다른 이가 되어가는 과정 말이다.”


셜록을 연기하는 게 여전히 매혹적인가.


“물론이다. 대충 2년 반 마다 한 번 정도하는데 진화한다. 그를 좋아한다. 너무 좋아하는 게 위험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렇게까진 되고 싶지 않지만…. 많은 셜록이 있었고 많은 배우들이 그 역을 해왔다. 내가 그 역을 독점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룬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여긴다. 매혹돼 있느냐고? 그렇다.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운이 좋은 배우다.”


모팻은 당신이 가장 탁월한 셜록 해석자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뇌물을 줬다(웃음). 과분한 칭찬이다.”


대단히 영국적 드라마이고 영국 배우들이 출연한다. 그럼에도 세계적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작품이 좋기 때문이다. 코난 도일의 원작 자체도 세계적 히트작이었다. 첫 대본을 읽었을 때 곧바로 빠져들었을 정도로 잘 썼더라. 위대한 얘기는 문화·민족·국적 등 어떤 차이도 넘어선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달성하고 싶은 목표들)는 없다. 다만 스크루지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존은 셜록을 인간다워지게 만든다”]

이번엔 마틴 프리먼이다. 제작자들은 처음부터 셜록으로 컴버배치를 낙점했다. 왓슨은 달랐다. 여러 후보가 있었다. 그러나 프리먼이 컴버배치와 주고받는 걸 보는 순간 프리먼으로 결정했다. 그 정도로 처음부터 척척 맞았다. 이른바 ‘케미스트리’다.


프리먼은 무명까진 아니었다. BBC의 인기 시트콤인 ‘오피스’의 주연 배우였다. 다정다감하지만 연애엔 숙맥이고 일엔 요령부득인 캐릭터다. 셜록 이후 컴버배치의 상승이 즉각적이었다면 프리먼은 완만했다. 그러나 그 역시 내로라하는 영화 프랜차이즈인 ‘호빗’의 주역 빌보 배긴스를 꿰찼고 디즈니의 마블에도 합류했다.


왓슨역을 하기 위해 여전히 준비가 필요한가.


“이젠 익숙하고 편해졌다. 물론 가끔 생각한다. ‘내 연기가, 내가 과거에 한 걸 모방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다시 그 사람으로 돌아가서 하는 걸까’라고 말이다. 존은 나와 다소 말투도, 가만히 있을 때의 자세도 다르다. 그러나 이젠 좀 안다고 여긴다.”


시즌 4에 대해 말해 달라.


“아이가 있다. 물론 알고 있겠지만. 더한 스릴과 분출, 액션이 있을 거다. 우리가 (대본을) 망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웃음). 대본 기준으로 가장 강력한 시즌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대본을 보고 흥분했다.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처럼 힘이 있는 대본의 드라마를 함께할 수 있어서다.”

아내역인 메리가 이번 시즌에서 죽는다는 설이 있다.


“그런가.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뿐이다. 다행히도 난 대본 읽기를 마치면 그 즉시 모든 걸 까먹는다. 더군다나 셜록은 플롯이 워낙 꼬여있어서 방영분을 볼 때야 ‘아 그랬지’한다(웃음).”


유령신부에서 빅토리아 시대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즐거운 경험이었다. 알다시피 실제로 빅토리아 시대로 간 건 아니었다. 약으로 혼란스러웠던 셜록의 두뇌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원래 내가 연기한 캐릭터의 왓슨이 아닌 셜록 머릿속의 왓슨이다. 관객들이 막판에 이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진 빅토리아 시대의 ‘셜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연기해야 했다. 미묘한 지점이었다. 캐릭터에 몰두하지만 때때로 베네딕트를 보며, 혹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우린 (BBC 드라마의) 존과 셜록이 아닌 코난 도일이 의도한 홈즈와 왓슨을 연기하는 것’이란 사실을 떠올리곤 했다.”


지적 능력으론 왓슨이 셜록을 못 따라간다.


“셜록은 가장 명민한 사람이다. 그러나 왓슨에겐 다른 면이 있다. 사실 처음엔 현대물이라 걱정했다. 너무 쿨하고 너무 아는 체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막상 대본을 몇 페이지 읽어보곤 대단하다고 느꼈다. 배우로부터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는 대본이다.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왓슨으로서도 더 보여줄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셜록이 머리라면 존은 가슴이라고 여긴다. 나도 동의한다. 그의 두뇌와는 다툴 수 없지만 다른 면에선 그와 대등하다는 점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두 제작자가 첫 눈에 느꼈듯 둘의 케미스트리는 남다르다. 프리먼의 아내인 아빙톤이 “같은 방에서 둘이 추론 장면을 연기하는 걸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할 정도다. 전통의 단어론 우정, 요즘 말로는 브로맨스다.


프리먼은 지독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때로 불쾌한 인물인 셜록에게 왓슨이 되돌아가곤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존은 모험과 흥분을 좋아한다. 군 장교(군의관)였다.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도 명령을 받곤 했다. 그가 셜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죽음과 위험·음모가 펼쳐지는 한 가운데 있을 수 없었을 게다. 존이 매번 그에게로 향하는 이유다. 그는 셜록을 좋아한다. 보완적이라고 느낀다. 나는 존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으며 지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다 ‘젠장할, 나보다 월등히 똑똑한 걸’이라고 깨닫게 되는 누군가를 만난 게다. 현실에서도 당신과 전혀 다른 이와 친구가 되지 않는 일이 있지 않나.”


컴버배치의 말은 이랬다.


“괴이한 조합이랄 수 있다. 그럼에도 교감하는 건 스릴·모험 등을 추구한다는 게다. 기꺼이 위험도 감수한다. 그러면서도 둘의 관계가 진화한다. 존은 분명 셜록을 인간다워지게 하는 영향을 주곤 한다. 원작보다 더 그럴 게다. 그렇다고 셜록이 자신이나 친구를 위해 자신을 누그러뜨릴 사람은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끊임없이 비꺽대는 우정이 희극성과 갈등, 드라마가 결합된 위대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연료라고 생각한다.”


둘은 언제까지 같이 할 수 있을까. 컴버배치는 “보자”고 했다. 프리먼은 “이전 배우들보단 우리가 젊은 편”이라고 했다. 일단 시즌 5는 확정된 상태다. ●


런던 글 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사진 BBC Worldwide


[기사 : 중앙SUNDAY ?http://sunday.join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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