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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통피니언] 수능 고사장은 제 2의 세월호였다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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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1월 17일, 경북 경주시 경주고 수능관리본부에서 서울대·부경대 소속 연구원이 고사장에 설치된 지진계측장비와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지진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1월 17일, 경북 경주시 경주고 수능관리본부에서 서울대·부경대 소속 연구원이 고사장에 설치된 지진계측장비와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지진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7일 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고3들의 교실은 절망으로 가득찼다. 불수능이라더니 생각보다 등급컷은 높았고, 내 등급은 낮았다. 긴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지며 '재수생 대잔치'를 예고했다.

지난 11월 17일 고등학교 3학년인 우리는 12년의 학교생활을 평가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수능 준비로 바쁘고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화도 내지 못하고 넘어가버린 일을 지적하고 싶다. 바로 수능 당일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9월 여러 차례 강타한 지진은 한국은 더 이상의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야간자율학습은 중단되고 학생들은 집으로 귀가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지진에 경북지역 학생들은 지진의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지진이 전국적, 지속해서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지진사태 이후 곧바로 수능 날 지진 발생 대비 대피훈련을 학교별로 실시하였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형식적인 영상 교육과 운동장 대피만 이뤄졌다. 수능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교육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경북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처럼 새로운 지진은 없을 것이니 언론에서는 추측성 보도를 자제하라며, 지진 발생 대처 매뉴얼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내심 세월호의 교훈을 담아 꼼꼼한 매뉴얼집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래픽=양리혜 기자]

[그래픽=양리혜 기자]

하지만 교육부가 11월 9일 발표한 수능 날 지진 발생 대처 가이드는 A4 한장 반 짜리에 불과했다. 지진 발생 가이드는 가·나·다로 3단계로 나뉘었다. ‘가’는 진동이 가벼워 시험을 계속, ‘나’는 진동이 느껴지나 위협단계가 아니므로 결국 시험을 계속, ‘다’는 피해가 우려되어 운동장으로 대피한다고 되어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10분 이상의 수능시험 중단에 따른 대책이나, 대피운영에 대한 가이드는 제시되지 않았다. 만약 특정 지역에서 '다'단계 지진이 일어나 수험생이 전원 운동장으로 한 시간 가량 대피했다면, 교실의 의자 따위가 몇 개 파손돼 기물을 교체할 별도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손실된 시간은 어떻게 계산해 남은 시험 시간에 반영할 것인가? 만약 당일 시험을 재개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지진으로 인한 시간의 물리적 손실 뿐 아니라 심리적인 손해는 어떻게 헤아려 줄 것인가?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 시험을 치른 지역과 치르지 못한 지역으로 나뉠 경우 문제가 유출되는 건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런 경우에 대비해 새로운 문제를 준비할 것인가? 그저 개별 학생들의 운이 나쁜 탓으로 돌릴 셈인가? 지진과 관련해 떠오르는 이 수많은 의문에 대한 답은 A4 한장 반짜리 대책에서 결코 찾을 수 없었다.

경미한 지진인데도 수험생이 자체 판단해 대피하면 '무단이탈 시험포기자'로 간주된다는 경고는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를 부른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와 크게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수능 당일 지진이 일어났다면 학생들은 대피도 제대로 못 한 채 수험장에서 짧은 인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었다.

지난 5일 포항 인근 해역에서 또 규모 2.1 지진이 일어났다. 내가 시험을 볼 때엔 지진이 일어나지 않길, 우주의 기운을 모아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 밖에 대한민국의 고교생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2014년 세월호 참사의 교훈은 어디로 가고, 트라우마만 짙어지는 것일까.

글=김성사(수원 수성고 3) TONG청소년기자 당수지부
도움=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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