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김근태, 盧와 왜 틀어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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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김근태 민주당 의원에 대해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한 점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당과 정치적 노선은 달리하지만,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기술자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낸 그의 의지력과 삶에 대한 성실성.철저성을 인정한다는 얘기였다.

지난해 3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한 '양심고백'으로 그가 재판을 받게 되자 崔대표와 홍사덕 총무가 증언을 자청한 것도 그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金의원이 노무현 대통령과 끊임없이 대치하고 있다. 지난 대선 이후 두 사람은 한 번도 따로 만난 적이 없다. 그 흔한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가까울 것으로 짐작됐던 두 사람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됐을까.

역사에 대한 시각 차가 첫째 원인이다. 김근태는 盧정권을 DJ정권과 함께 본격적 진보개혁 정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본다. 당연히 盧정권은 DJ정권 지지층과 민주화 운동세력 전반을 포용해 지지층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무현은 DJ정권과는 차별화하려 하고, 70~80년대 운동권 세력과도 담을 쌓으려 한다. 이는 김근태에겐 역사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 시국인식 달라 특검 등 입장차

盧대통령의 방미 외교와 이라크 파병, 대북정책에 반대하고 盧정권의 '코드론'을 '패거리 정치'로 지적하는 것도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해 하반기 盧후보 지지도가 20% 아래로 떨어져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았을 때 '후보 단일화론'을 편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그에게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어떤 세력이 집권세력이 되느냐가 더 중요했다. 김근태의 얘기다. "盧후보로 단일화되는 게 최선이었지만, 정몽준씨로의 단일화가 차선은 됐다. 鄭씨는 세력이 없었기에 개혁진보 세력이 치고들어가 역할할 공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이다.

정권 초 노심(盧心)이 '민주당 해체.개혁신당'으로 기울었을 때 김근태가 "한반도 평화세력과 개혁세력의 연합"을 강조하며 '민주당 중심의 개혁적 통합신당'을 주장한 것도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 盧의 운동권 폄하발언도 한몫

DJ에 대한 태도에도 차이가 있다. 김근태는 '인간 DJ'를 존경하고 애정을 갖고 있다. 盧대통령이 평가하는 것은 '정치인 DJ'였다. 이런 것이 대북송금 특검 등에 대한 입장 차로 나타났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된 이유를 자존심과 감정의 충돌, 운동권 주류의식과 이에 대한 콤플렉스의 충돌로 보는 시각이 있다. 두 사람은 부인하겠지만 이것이 핵심 요인일 수도 있다.

김근태는 경기고.서울대 상대 출신에 운동권 주류의 대표적 인물이다. 노무현은 부산상고를 거쳐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했으며, 30대에 뒤늦게 운동권에 합류했다.

이런 두 사람이 부닥친 것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다. 그 후 노무현이 김근태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처럼 소원해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지난해 8.8 재.보선 공천 과정은 양측이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고비였다. 재야 명망가 장기표(현 사회민주당 대표)씨의 영등포을 공천에 노무현은 반공개적으로 "그 사람은 한물 간 사람 아니냐"고 했고, '운동권 연고주의'라고 비판했다.

'운동권 주류의 편협성'과 '역사에 대한 오만성'을 서로 비판하는 두 사람이 현재로선 손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 게다가 둘 다 굽히는 것은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이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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