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사람] 한화 투수 지연규 '인생 부활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야구는 제 인생의 '적'이자 '동지'입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투수 지연규(池連奎.34)선수의 야구 '짝사랑'은 지독했다. 국가대표-최고의 유망주-부상-2군행-수술-은퇴-복귀를 거듭하는 사이에 그의 삶은 어느덧 '드라마'가 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야구가 좋았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을 돌면서 다른 동네 야구팀을 줄줄이 깨버릴 때는 더했다. 당시 면 내에서 '투수 지연규'를 모르는 사내아이는 없었다.

그는 야구부에 가기 위해 등교할 때 버스를 타야 하지만 태안중학교를 고집했다. 태안중 노기붕 감독은 "투수는 기본기에 충실하라"며 방망이를 못잡게 했다.

천안북일고를 거쳐 동아대를 졸업한 池선수는 1992년 신인 최고 대우(계약금 8천7백만원, 연봉 1천2백만원)를 받으며 당시 빙그레에 입단했다.

그러나 '야구'는 매몰차게 그를 외면했다.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통증을 느꼈지만 시속 1백45km의 공을 꽂으며 피칭 프로그램을 따라갔다. 그는 "신인이라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며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발목을 잡은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

결국 팔꿈치는 고장나고 말았다. 신인왕 후보 1순위였던 池선수는 신인왕 조건(30이닝 이상 투구)도 못 갖춘 채 시즌을 마쳤다. 이후 2년간 마운드에 거의 오르지도 못했다.

95년 4월 16일 삼성전에서 공을 던지다 팔꿈치에서 "뚝!"하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2군행이었다. 그는 "팔꿈치에 좋다는 마늘즙과 뱀술 등 안 먹어 본 게 없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야구를 접고 차라리 레슨 골퍼가 돼라"고 충고했다. 부인도 "이제 마음 고생은 그만하자"고 말했다.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야구를 버릴 순 없었다.

97년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어깨 수술을 받았다. 뼈에서 떨어진 근육을 좁쌀만한 핀으로 박아 놓았다. 7개월의 재활 치료 후 그는 '마지막 시험'이란 생각으로 있는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공은 15m 앞에서 뚝 떨어졌다. 아무리 힘껏 던져도 그 이상 날아가지 않았다. 池선수는 가방을 쌌다. "다시 돌아오겠다"며 몇번이나 입술을 깨물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은퇴한 池선수는 대전고 야구부 코치를 맡았다. 2년 동안 그는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에 하지 않던 캐치볼을 하다가 20m나 공을 던졌다.

통증도 없었다. 다시, 또다시 던져 보았다. 공은 40m, 70m, 마침내 1백20m까지 날아갔다. 공의 속도를 재봤다. "쉬이익~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속 1백46km로 꽂혔다. 전성기 때 최고 구속(1백49km)에 육박했다.

池선수는 "돌아온다"던 다짐대로 지난해 한화로 복귀했다. 5년 만이었다. 그리고 '노장(老將)'이란 간판을 달고 4승9패를 올렸다. 그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인생 역전'이었다.

올시즌엔 4게임에 출전, 승리없이 1패만 기록하고 있지만 "나에게 야구는 마라톤이다. 마운드에 서는 순간 삶과 정면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며 변함없는 야구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