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선노동당 제재…북한 2대 외화획득원 의류 수출도 타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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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일 발표한 대북 독자 제재에서 조선노동당과 인민무력성을 금융 제재 대상에 올렸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용해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 북한 체제의 핵심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황병서, 최룡해 등 제재대상 확대…당·정·군 핵심인사 대거 포함
“남북대화 국면서 걸림돌” 지적에 정부 “지금 상황서 대화 전제 적절치 않아”
北 해외노동자 송출 기관, 고려항공도 처음으로 제재 대상에 올려

정부는 제재 대상을 기존 34개ㆍ43명에서 69개ㆍ79명으로 확대했다. 특히 북한의 최고권력기구인 조선노동당을 포함시킨 것은 유엔 안보리 제재와 각국 독자 제재를 통틀어 처음이다. 이는 북한 체제 자체를 범죄집단으로 보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노동당 관련 산하 기구가 이미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 의사결정의 최고기관으로서 노동당은 당연히 제재 대상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정부는 김원홍 보위상, 박영식 인민무력상, 윤정린 호위사령관, 최영호 항공·반항공 사령관, 김명식 해군사령관, 박정천 인민군 화력지휘국장, 조경철 인민군 보위국장 등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김여정만 빼고 당·정·군의 핵심인사들은 대부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북한 최고위급 인사까지 제재 명단에 포함시킨 것은 향후 남북 대화 국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병서, 최용해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났다. 지난해 북한 목함지뢰 도발 사건 이후 이뤄진 남북 고위급 당국자 접촉에도 황병서가 나왔다. 이들이 곧 남북 대화를 위한 특사로 활동할 수 있는 인사들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제재대상에 오른)이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시점에선 예단하기 어렵다”며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제재, 압박을 할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대화를 먼저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다만 “국제행사나 남북대화의 진전된 가능성을 봤을 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엔 국제적 관례 측면을 감안해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주요 외화수입원인 석탄 수출과 노동자 해외송출에 관여하는 북한 기관 및 단체도 제재대상에 처음으로 포함됐다. 주원혁 백설무역 다롄대표부 대표 및 강봉무역, 원봉무역, 백설무역, 원유개발총회사(석탄 수출·원유개발·유류거래 관여)와 대외건설지도국, 남강건설, 철현건설(해외노동자 송출 관련 기관) 등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제3국 기업에게 그 자체로 북한의 불법행위에 연루되는 것이란 경고성 메시지를 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공군사령부 소속으로 노동자 해외 송출, 현금 운반 및 금수물자 운송에 관여하고 있는 고려항공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항공운송분야 제재 강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의 제재 대상 지정은 유엔 안보리나 다른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국가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토대로 제재 대상에 올리면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인물이나 기관을 제재 대상으로 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독자제재를 준비하면서 한·미는 관련 정보를 긴밀히 공유했다. 미국이 곧 발표할 독자제재에서도 해외노동자 송출, 석탄 거래에 관여한 이들을 제재 대상으로 정할 방침이며, 한국 정부의 명단과 상당수 중복된다고 한다. 미국은 고려항공도 제재 대상에 올리기로 했다.

정부는 북한의 의류 임가공 무역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삼았다. 국내 의류 수입 관련 협회 및 단체를 대상으로 북한 임가공 제품을 중국산으로 속여 수입할 경우 원산지 표시 규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릴 계획이다.

북한의 3대 외화 수입원은 ▶석탄 등 광물 수출 ▶의류 임가공품 수출 ▶해외노동자 송출 등이다. 이 중 의류 부문은 석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분야다. 북한은 2015년 의류 임가공 수출로 8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전체 수출액의 32.2%에 해당한다.

하지만 북한의 의류 임가공품 수출이 대부분 중국 기업이 북한 기업에 하청을 주거나,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 이뤄지는 것이라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쉽지 않다는 측면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김형석 통일부 차관은 이에 대해 “북한이 핵·미사일 등 대량살살무기(WMD) 개발에 사용하는 외화를 원천 제한하고 차단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제재에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정부로부터 이미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중국 훙샹(鴻祥)산업개발 및 임원 4명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중국 국적자와 기업이 정부 독자제재에 포함된 건 처음이다. 이로 인한 중국의 보복조치 등에 대한 우려에 대해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국제규범을 위반하고 불법적 거래 한 당사자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중국에 사전통보하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밖에 북한에 기항한 제3국 선박의 국내 입항 금지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렸다. 북한의 잠소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과 관련, 잠수함 분야에 있어 북한 맞춤형 감시대상품목(watch-list)도 만들어 국제사회와 공유하기로 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 중 국내 대학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핵·미사일 분야 전문가가 북한을 방문해 한국 국익을 저해하는 행동을 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국내 재입국을 불허하기로 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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