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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유보 정야 -4.13그후|냉기감도는 정향기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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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국 전반에 냉기가 감돌고 있다. 4·13조치후 정부와 여당은 현행헌법에 따른 정치일정을 지겨나갈 결연한 의지를 서슬 푸르게 가다듬고 있다. 여권의 강경한 선회를 숨죽이고 쳐다보고 있는 야당측은 후속조치들을 조바심을 내며 주시하고 있다.
기세를 돋을 것으로 예상됐던 통일 민주당(가칭)의 지구당 창당대회는 조용히 옥내집회로 치러질 계획이다. 14일에 있은 김영삼창당준비위원장의 기자회견도 4·13 개헌유보조치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짚긴했지만 그 톤은 낮았고 새삼 실질대화가 강조되었다. 구체적인 대책들은 창당대회 이후로 미뤄졌다.
눈앞에 닥친 한파를 우선 피해놓고 사태의 윤곽이 보다 뚜렷해질때까지, 그리고 창당이 이룩될때까지 시간을 벌어보자는 생각인 것같다.
그러나 어차피 여당측이 개헌으로의 모든 길을 차단하고 나선 이상 야당측에 남아있는 선택이라곤 그 정치일정을 그대로 따르거나, 아니면 다시 개헌을 부르짖으며 양외로 뛰쳐나가는 두길 밖에 남아있질않다. 후자의 경우 물리적 충돌을 각오해야 하고 그것은 자칫파국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야당측의 사대분석 밑바닥에 깊숙이 깔려있다.
말하자면 마주달려오던 두 열차가 충돌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느낌들이 감돌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로서 여야 어느 쪽도 그와같은 사태를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진 않지만 그들은 내심 그런 사태가 거의 피할수 없는 상황속에서 다가오고 있는것으로 예상하고있는 것같다.
여당측의 정치일정이 야당측의 개헌 주장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고 지금까지 개헌을 고창해온 야당측이 갑자기 급선회할 것으로도 보이지않기 때문이다.
여당측의 일정은 연내에 현행헌법에 따른 대통령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전후해서 지방자치제 선거가 치러질 모양이다.
이에 따라 민정당측은 곧 대통령후보를 뽑고 선거인단 선거에 대비하는 본격적인 선거 채비를 시작할 방침으로 부산하다.
이에 대해 통일민주당측은 아직 분명한 대응책을 밝히러들지 않고 있다. 자칫하면 그 판단이 어떠한 정치적 재난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은 현행헌법에 의한 선거는 거부하겠다고 주장해 봤었다. 현행헌법의 정통성을 문제삼았고 선거인단 선거라는 것이 여당의 일방적 승리를 보장하는 제도라고 비난해 봤던 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초가 크게 바뀔리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선거혁명을 내세운다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까지 그런 「혁명적 효과」를 기대하는것 같지는 않다.
그들이 대통령선거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면 개헌투쟁으로 되돌아갈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문제는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투쟁을 전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한 선거 보이코트도 한가지 대안이다. 소극적인 부삼운동으로만 나갈 경우 반드시 물리적 충돌이 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로서는 현행헌법에 의해, 그리고 야당의 부삼상태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 의해 구성되는 문기 정권의정통성을 문제삼을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야당측 투쟁생리로 볼때 그들이 이같은 소극적인 방식을 택할 가능성은 크지않을 것같다.
당장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엎드려 있긴 하지만 야당측은 그들의 성명대로 『모든 민주세력과 연대해 단호히 대응』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시 서명대회를 벌이며 장외로 뛰쳐나가거나 범국민투쟁기구의 모색등을 생각할수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재야나 학생권의 동향, 여론의 흐름에 민감히 따를 것으로 전망할수 있다.
그러나 창당대회때까지는 신중한 관망속에 창당작업만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야당측은 창당작업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창당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그들은 장외보다 먼저 원내 목으로 머리를 돌릴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신분이 보장받을수 있는 곳에서, 여당측의 정치일정에 따른 지자제관계법의 처리과정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여권의 최종적인 진의를 타진해볼 작정이다.
야당측은 새로운 김영삼체제에서 실질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측은 이것이 하나의 전기를 가져올 실세대화가 될수 있다는 한가닥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당측은 그러한 가능성을 벌써부터 부인하고 있다. 그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이미 분당했을 때부터 신당이나 두김씨는 대화의 상대로는 실격됐다는 것이며 이제는 개헌논의의 필요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측은 그들이 중단시킨 국회헌특의 재개를 요구할 명분도 없다.
그들이 개헌정국 타개의 유일한 수단으로 주장해온 실세대회라는것의 의미도 사실상 실핵된 것으로 확인되면 다시 장외투쟁의 명분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으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다.
여당측은 이런 장외투쟁을 「무질서한 개헌논의」로 간주할 것이고 「단호한 조치」로 대응할 것이다. 정부·여당측은 최악의 순간에는 비상한 대책들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사법적인 조치로 대응한다는 것이 기본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법적 조치들은 사생활이나 자질에서 문제가 있는 국회의원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그런 의원들이 10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들이 근거 없이 나돌고 있다.
또 사법적 조치는 정당해산으로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 헌법에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활동을 한 정당에 대해서는 헌법위원회가 해산을 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야당측은 출구를 봉쇄한 여당측 강경조치의 궁극목표가 야권의 개편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목표는 정치권에서 두김씨의 영향력을 축소하거나 아예 배제하자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김대중씨의 재수감이니, 김영삼씨의 배제니 하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만큼 여권은 두 김씨에 대한 거부감을 감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이 두김씨를 그들의 정치구도에 대한 가장 큰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것 같다.
그러나 여권이 그들의 정치일정강행에 따라 무리하게 인위적인 개편조치를 취할 경우 그것이 앞으로 커다란 정치적 부담으로 남을것이라는 점은 여당측도 인식 못하고 있는것 같지는 않다.
더우기 야권의 개헌투쟁이 여권의 정치일정 추진에 차질을 빚을 만큼 강력히 확산되면 정치적인 혼란의 가능성도 없지 않고 최악의 경우 정치권 자체가 붕괴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정치권의 기류는 예상하기 어려울만큼 불투명하고 기복이 심할 것이다. 그만큼 예상밖의 급전가능성도 항상 감춰져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김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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