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은 「외곬의 투사형」|산실에서 그려본 신생아의 모습과 성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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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9일 창당주비위구성으로 산실에 들어간 신당이 어떤 모습으로 막바지 개헌정국에 등장할지 관심이 집중되고있다.
겉모양은 김영삼 총재·김대중 상임고문의 「두 김씨 정당」이란 윤곽을 이미 뚜렷하게 굳혔고, 성격도 신민당에 비해 외곬의 보다 투쟁적일 것이 거의 틀림없지만 전체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신당은 앞으로 9일 결성된 창당주비위를 스타트로 △창당발기대회 △창당준비위를 구성하고 △당명짓기·창당선언문·정강정책·당헌당규작성 △당사마련 △지구당조직책선정 △지구당창당대회(법정요건은 23개)를 거쳐 이념적·조직적 기틀을 마련한뒤 이달중으로 창당전당대회까지 마칠 계획이다.
물론 이에 앞서 법적 절차상 신민당탈당을 매듭지어야 한다. 창당대회까지의 과정에서 우선 관심을 끄는 대목은 아무래도 당직인선내용.
3·17 이-김회동을 전후해 한때 분당을 하게되면 「동교 30·상도 30·재야 30·비주류 10」을 동교동측에서 주문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었다.
이에 대해 김대중씨는 8일 『50대50으로 공정히 배분될 것이며 재야인사를 영입하더라도 각각 자파몫에서 할애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김씨는 또 『재야인사중 스스로 참여하길 희망하거나 영입하고자하는 인사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현재의 직장관계상 어렵거나 사면·복권이 안된 사람이 많아 현실적으로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안다』고 밝혀 재야측에선 몇몇 사람만 참여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상 비정치권의 재야인사들은 이념적으로나 현실개혁 방법면에서나 기존 정치인그룹과는 성격을 달리하기때문에 이들을 모두 수용하는 신당을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그렇다면 결국 정치권에 속해있다고 할 수 있는 상도동계의 민주산악회와 동교동계의 민헌연으로 압축된다.
김씨의 『현실적 어려움』이란 말속엔 이들도 전체를 흡수하기엔 신당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뜻도 함축한 것으로 보여진다.
신당이 「두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민추협을 계속 존치시키는 이유는 포화상태의 정치수요를 소화시키기 위한 방편이라고도 이해되어진다.
관계자들은 신민당의 재야케이스로 남겨뒀던 정무위원 5석을 상기시키며 재야(엄격한 의미로는 원외)쪽에서 양파 각각 2∼3명쯤 보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동교동쪽에선 민헌연의 박영록·박종태씨와 조윤형씨 등이, 상도동쪽에선 김명윤·김창근·신상우씨 등이 조심스레 거명되고 있다.
지도체제는 김영삼씨가 『단일이 아니면 안된다』고 단호한 반면 동교동쪽에선 집단지도체제를 꾸준히 주장하고 있어 엇갈리고 있으나 분당의 댓가로 동교동쪽이 양보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부총재는 신민당과 비슷하게 5명 또는 7명(상도동이 총재를 맡게되므로 부총재는 동교동쪽에 1명 추가)이 될 것으로 보여지 단일이든 집단지도체제가 되든 두 집안상의에 의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경선에 의하더라도 큰 의미는 없게된다.
문제가 있다면 「인물」이 많은데서 오는 양쪽집안의 인선고민정도.
상도동계에선 현 최형우부총재외에 이번에 가담한 김수한부총재가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김영삼씨의 오른팔격인 김동영의원과 장로급인 박용만·박일·황낙주의원, 기타 재야보강팀이 모두 만만치않은 상태.
동교동계에선 이중재·노승환·양순식부총재외에 이용희·박종률의원과 역시 보강될 인사들에 대한 예우문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양파가 나누어 갖게될 사무총장·원내총무도 이해가 엇갈려 있는 대목.
특히 총무자리는 동교동계가 대여창구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눈독을 들여온 자리며 상도동계로서도 일사불란한 활동을 위해선 총재-총무의 라인업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동교동쪽이 역시 분당의 댓가로 양보할 것이란 예측도 있고 김영삼씨가 총재직의 댓가로 양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으나 두 집안간 분명한 매듭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상태인 듯하다.
신당이 앞으로 개헌정국을 어떻게 이끌어갈지는 최대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두 김씨의 성향이 크게 의회중심과 장외중심으로 분류되어지듯 간단하게 규정하기가 어렵게 돼있다.
김영삼씨는 「선거투쟁」을 강조하며 『국회를 통한 합의개헌』을 입버릇처럼 뇌어왔다.
측근들은 그의 당권장악에 대한 집착을 『실세를 바탕으로한 실질협상과 대타협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때문에 당권을 쥐기까지 동교동쪽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었지만 일단 총재에 앉게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김현규의원같은이는 『지금까진 협상론을 색깔이 모호한 인사들이 거론함으로써 협상의 몸짓을 보일 경우 자칫 선명논쟁에 말려들 우려가 있어 운신하기 어려웠으나 이젠 홀가분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씨가 헙상노선을 과감히 택할 것이란 전망에 대해선 대체로 회의적이다.
우선 이번 분당의 의미가 대통령중심 직선제개헌이외의 방법에 대한 척결을 의미하기때문에 협상을 하려해도 그만큼 협상의 폭이 좁아졌음을 읽을 수 있다.
김영삼씨 스스로도 「이민우구상」을 제거시키는 과정에서 대외적으로 협상품목들을 매장시켜왔다고 볼 수 있다.
또 완충세력없이 김대중씨와 맞부닥뜨리게 됨으로써 협상론이 제기되더라도 김대중씨의 분명한 개헌노선과 충돌하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어차피 경성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매우 높을 수 밖에 없다.
두 김씨는 강경 투쟁으로 나갈 것이란 우려여론을 의식한 듯 교섭단체가 구성되는대로 임시국회를 소집, 원내투쟁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당분간은 국회를 중심으로 유화적인 태도로 나올 것이 예상되지만 분당에 이르기까지 1백여일동안의 내분에서 입은 상처와 실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또는 자체성격상 장외투쟁에 의지할 가능성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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