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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폭락 위험수위|미의 대일무역 보복조치로 가속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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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달러화폭락이 위험수준에 도달했다. 일본통화당국도 엔화 급등보다 세계기축통화인 달러폭락 사태를 막기 위해 긴급조치를 발동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30일 일본은행이 동경 외환시장에서 25억달러를 사들였으나 폭락세에 제동을 거는데 실패했다.
일본의 보험회사를 비롯해 은행과 종합상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미국의 채권매입 등 해외에서 굴리고 있는 돈은 약1천억 달러. 이는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액과 거의 맞먹는다. 상품을 수출해 번 돈을 해외에 투자해 균형을 유지해 왔던 일본기업들이 달러화를 마구 투매해 폭락세를 가속화시켰으며 세계외환시장의 혼란을 증폭시켰다.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의 충격적인 대일보복조치가 다른 분야로 연쇄반응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달러화에 대한 불안심리를 가중시켜왔다. 『혹시나』하고 계속 달러화를 거머쥐고 있던 일부 기업들이 수백억달러의 환차손에 끙끙 앓아왔으며 급기야 달러투매를 몰고 갔다.
미국이 달러방위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 일본은 아직 회의적이다. 달러시세가 떨어지면 일본자본의 미국유입이 막힐 것이며 미국은 재정적자를 메우기 힘들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대미채권투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라도 달러방위에 나설 것이라고 일본은 기대하고있으나 미정책의 강도에 문제가 있다.
달러화·엔화시세 안정여부는 미일무역마찰 및 미국의 재정적자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관련제품에 1백%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미국이 으름장을 놓은 데 대해 일본이 몇 가지 유화책을 제시했으나 미국의 노기를 진정시키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들이 태반이다. 미국은 『말보다 행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행동의 시기를 4월로 못박고 있다.
일본의 첫 번째 대미유화책은 내수시장확대개방.
미국은 수년동안 이 말을 들어 왔으며 협상 차 동경에 갔다가 늘 빈손으로 워싱턴에 돌아갔다고 넌덜머리를 낸다. 지금까지 『밖으로 확대, 안으로 폐쇄』되었던 일본의 수출의존형 성장을 내수주도의 성장노선으로 전환시키려면 「나카소네」수상이 재정재건의 깃발을 내려야할 만큼 고통스러운 결단과 시간이 필요하다.
미일간의 「기술 안보」는 양국의 무역마찰을 결코 완화시킬 수 없는 차원까지 끌고 갔다. 미국은 이미 NASA(미항공우주국)의 대일정보제공을 금지시켰으며 일본의 반도체 메이커인 후지쓰(부사통)의 미 페어차일드사 매수도 봉쇄했다.
국가전략상 산업의 핵인 반도체산업을 일본에 넘겨줄 수 없다는 미국의 안보개념에 대해 일본은 양국산업의 공존공영을 위한 자본교류를 미행정부가 방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력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본은 어떤가. 국가의 동맥인 통신사업에 미영자본이 뛰어들지 못하도록 출자비율을 제한함으로써 미영 양국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해양공항인 신관서공항 건설공사에 미국기업도 배제시켜 왔다.
일본이 폐쇄적인 통신·공항건설 사업에 미국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는다면 거기에는 역시 많은 제한이 따를 것이다.
더욱이 최첨단기술이 얽혀진 사업에는 말할 것도 없다. 철강업의 경쟁력상실로 업종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신일본제철도 『기술이 소멸되면 일본이 망한다』고 주장하고있다. 「기업이 망한다」기보다 「국가가 망한다」는 기술국가주의(테그너 내셔널리즘)는 일본업계나 관계에 뿌리 박혀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기술국가주의와 계속 충돌을 일으켜 미일간 무역마찰을 결코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1971년 무역마찰을 둘러싼 미「닉슨」대통령의 대일공격 이후 미국은 일본의 시장개방 지연작전에 지쳐왔다.
일본의 정치 및 행정스타일을 모르고 덤빈 탓도 있다.
미국이 일본에 대해 「행동」을 보여야할 때라고 서두르는데 대해 일본은 미국에 잘못 대응하면 다른 분야까지 연쇄반응을 일으키므로 『감정에 흐르지 말라』고 애써 감정을 억제하고 있다. 【동경=최철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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