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지방 문화(2)|향토사 연구|충주 예성동호회 유적 찾아 9년…국보도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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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79년2월25일 충주의 향토 문화 연구 모임인 예성(예성) 동호회 회원들은 충북 중원군 가금면 룡전리 입석 부락에서 그때까지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해서 백비로 알려졌던 비석 모퉁이에서 희미한 글자를 확인하고 탁본을 뜨는 한편 이 비를 학계에 보고했다.
단국대 고적 조사단은 보고를 받고 이 비를 면밀히조사, 그해 4월9일 이 비가 서기 495년에 세워진 고구려의 「남진순수비」라고 발표, 학계를 놀라게 했다.
중원 고구려비로 명명된 이비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최초의 고구려비로서 고구려의 남진정책과 삼국사를 밝혀주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이 비는 국보205호로 지정됐다.
중원 고구려비의 발견은 향토의 문화·역사를 밝혀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향토문화 연구 단체가 거둔 성과 중 가강 값진 것의 하나다.
예성 동호회는 유창종·장기덕(회장·전 충주 상고 교장)·김례식·김풍식·장준식씨 등이 충주 일대의 역사·문화를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보자는 의도에서 78년9월에 만들어졌다.
중원 지방에 거주하는 향토 문화에 관심을 가진 비전문가들이 모여 문화재를 찾아 내고 보호하며 그 지역 문화의 성격을 규명해보자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일요일마다 배낭을 메고 충주 일대 답사에 나서 충주가 고려 시대 예성이라는 별호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예성 신방석과 미타사 마애불·죽령장륙불 등 많은 문화재·유적지를 찾아냈다.
이들은 또 이 지역의 민요·전설·무속·종교 등을 회원 각자의 관심에 따라 조사했다.
예성 동호회는 초기의 공동 답사를 분야별 답사로 바꾸고 월1회 정기모임을 가져 토론을 하고 연1회씩 회보 『중원문화』 를 내는 한편 조사 결과를 알리기 위해 도록도 만들었다.
애향심에 불탄 회원들은 청주에 맞서는 충주 문화(중원 문화) 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충주 박물관을 세운다는 장기 계획 아래 시 당국과 협의, 충주 유물 보존관을 세우는데 발벗고 나섰다·
지역 문화에 대해 깊은 소양을 갖게된 회원들은 각종 문화행사·향토지기술 등에 참여하여 의견을 펴 나가고 있다.
예성 동호회와 같은 향토 문화 연구단체는 부산의 「토향회」, 안동의 「안동 문화 연구회」, 광주의 「광주 향토 문화 개발 협의회」, 옥천의 「관성 동호회」를 비롯, 용인·당진·구례·영광 등지 모임을 모두 합쳐 18개에 이르고 있다.
한국사의 연구에 연구는 필수적이다. 지방의 역사·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느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바탕 위에 한국사·한국 문화가 올바로 인식된다. 향토 문화 연구 단체의 활동은 그래서 지방인의 자기 발견인 동시에 향토사를 국사로 바꾸고, 향토 문화를 민족 문화로 전개하는 중요한 작업이 된다.
일본의 경우 전국에 6백여개의 향토 문화 연구 단체들이 있고 그들의 역할은 크게 평가받고 있다. 우리에게도 향토 문화 연구의「붐」이 예성 동호회와 같은 단체를 통해 일어나고 있으며 이 싹은 키워져야한다.
예성 동호회가 걷고 있는 길은 향토 문화 연구 운동의 확산을 위한 방법이 무엇이며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회가 만들어진지 3년쯤해서 정체기가 왔어요. 중요한 발견이 계속될 때는 신이 났는데 발견이 한계에 이르자 힘이 빠진 거지요』회원 이노영씨의 회고다.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할 대 발견에의 유혹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극복되어야 한다.
지역의 작은 것을 착실히 찾아가는 끈기가 무엇보다 요구된다. 향토 문화 연구 방법에 대한 지침서가 그래서 필요하다.
학계는 향토 문화 연구자들을 고무하며 역할 분담이 잘되도록 해야 한다. 중원 고구려비의 경우 학술 보고서에 예성 동호회의 발견 의의가 밝혀지지 않아 회원들의 실망이 컸다.
예성 동호회는 「역사 교실」을 열었다가 실패했다. 지역민·학생들의 호응이 적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역사·문화를 먼저 가르치겠다는 지방 교육의 방향 설립이 중요하다.
연구의 결과를 지역민과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축제의 방식은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연구의 결과를 축제와 연결시켜 지역민 모두가 지역역사·문화와 함께 할 수 있는 창조적 발상이 요구된다.
지역 사회·사회 단체의 지원도 필요하다. 대우 문화 재단은 오는 5윌 향토 문화인의 전국모임을 열 계획이고 7개 지역에는 회보 발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충주=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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