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 세 번째 대면조사 요구도 무시할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검찰이 피의자 신분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29일까지 대면조사에 응해달라고 어제 다시 요청했다. 이번이 세 번째다. 검찰의 설명은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 날짜를 정하는 게 급선무여서 수사 상황을 고려해 일정을 잡았다는 것이다. 검찰의 입장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은 뒤 수사기록 일체를 특검에 넘겼으면 하는 것이다. 특별수사본부가 청와대와 삼성의 미래전략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도 박 대통령을 둘러싼 혐의를 확정 짓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조사 기록을 바탕으로 특검이 수사를 벌일 경우 사건의 파악이 그만큼 용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이 지난 20일 특수본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 이후 “일절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대응이다. 자신의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잇따르자 대국민담화를 통해 “검찰은 물론 특검 조사까지 받겠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다짐하지 않았던가. 박 대통령이 국가 최고 사정기관의 정당한 법적 요구를 무시한 채 차라리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모순이다. 아직도 권위주의적 통치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미 국민적 분노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서울광장을 지나 청와대 앞까지 다가가고 있다.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대통령은 법률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접어들었다. 법률가 출신인 참모들이 오죽했으면 자신의 곁을 떠나려고 하는지 대통령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검찰의 조사 요구에 응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으면 한다. 진정 무엇이 국가를 위하는 길인지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을 벌이는 것은 어떨까.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검찰 요구를 무시할 경우 국민들의 비판은 그만큼 더해 갈 것이다. 향후 특검에서의 조사도 박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고난의 연속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