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만들려는 이총재에 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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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의 내분사태가 조기수습될 거이냐, 아니면 장기화와 악화일로로 치달을 것이냐는 이민우총재와 김영상고문이 한번 만나야 가닥이 잡힐 것 같습니다.
-이총재는 13일 확대간부회의에서는 2, 3일내 김고문을 만나겠다고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읍니다만 14일아침에는 다시 당분간 만날 생각이 없다고 굳어진 자세여서 대치상태가 좀더 가는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주류측도 완강해요. 이번파동에는 개헌노선 시비와 당권경쟁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단선적 문제해결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죠.
-오늘 하오 귀국하는 이철승의원 문제도 얽혀 사태해결이 쉽겠느냐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주류측에서 이미 은밀히 손을 쓰고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의원계의 K의원을 통해 어느 정도의 「보상」을 보장할테니 이의원이 문제의 기자회견내용을 해명하는 선에서 수습하자는 뜻을 일본에 있는 이의원에게 전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과연 이의원이 그 정도에 만족해 유감표명을 할는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요.
-이번 사태를 개괄적으로 관찰하면 김대중씨가 가강 큰 득을 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김대중씨가 늘바라던 일은 타협론을 배제하고 직선제당론을 강화, 고착하는 것이며 김고문을 직선제와 비타협폭으로 철저히 묶어 두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번 파동에서 그런 의도가 상당히 충족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야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계파간 지분싸움이 치열했고 결국 이번 사태의 근저에도 지분확보를 위한 파워 게임의 성격이 없지 않아요.
「선거가 있게 해야 한다」는 김고문으로서는 타협의 과정을 전혀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개헌시한에 여유도 없는 만큼 하루빨리 개헌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자기나름대로 끌고 나가고 싶어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권을 빨리 잡아야하고 김대중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사면·복권이 안된 김대중씨로서는 김고문처럼 다급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당내의 지분확보도 하면서 김고문의 정치적 부담과 동반관계를 더욱 강화하려는 다중적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내세력이 거의 없는 이총재가 버티는 원동력이 뭣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는데요.
-개헌정국과 관련된 정치인으로서의 야망과 미측의 지지 등이 이 총재를 버티게 한다고 보아요. 김고문이 당권을 잡는다해도 현재의 여건으로는 자신의 「선민주화론」이외에 방법이 있겠느냐,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욕을 먹더라도 후세에 평가받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차원에서 당권을 고수하면서『민주주의의 장에 이름 석자만 남기면 족하다』『재임기간 중 개헌을 마무리짓고 싶다』는 발언을 연발하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이총재가 옛날부터 『굴욕을 감수하면서…』라고 말해온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이총재에게도 두김씨로서도 무시못 할「힘」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3자와의 관계를 운영해오면서 두김씨의 「내막」을 샅샅이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또하나, 이총재가 뭔가 앞날의 정국에 대한 「감」을 갖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금년에 비상조치나 정계개편 같은 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고 그럴 경우 두김씨가 더이상 야당주역은 될 수 없으며 자신이 그때까지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버티면 자기역할이 있게된다고 보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죠.
-두김씨가 이총재에게 어찌보면 집단린치를 가하는 큰 이유의 하나는 이총재가 남은 임기 중 뭔가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을 사전 저지한다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총재는 대표회담·영수회담을 추진해왔는데 이를 통해 어떤 극적타결을 이끌어 냄으로써 개헌정국의 주역이 되고 나아가 당권에 대한 또 한번의 기회를 겨냥하는게 아니냐고 분석돼 왔어요. 두김씨의 이번 강공은 이총재의 이런 구상에 쐐기를 박은 셈이지요.
-촉박한 개헌시한을 생각하면 앞으로 2, 3개월이 가장 중요한데 이기간에 누가 주역이 되느냐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번 내분이 분당으로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두김씨로서는 우선 무엇보다 분당의 명분이 없습니다. 이총재가 내각제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이상 명분을 세우기 어려워요. 또 분당과 같은 사태가 여권의 중대결단을 재촉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야죠.
그리고 실제로 분당할 때 과연 의원들이 얼마나 따라올지 알 수 없는 일이고 한 살림이 됐을 때 두김씨간에 직접갈등이 불가피해질 우려도 없지 않아요. 이총재로서도 자기구상을 추진하자면 두김씨를 안고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두김씨가 받아놓은 의원70명의 서명은 어느 정도 구속력읕 가질까요.
-분당을 전제로한 서명이 아니니 만일의 경우 실효성은 많이 떨어진다고 보아야겠지요. 실제 서명의원중에서는 분당이 되면 남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외부의 개입이 없고 선거를 강하게 의식하면 70명보다 더 많은 숫자가 따라 나갈 수도 있습니다. 어느 당 공천을 방아야 당선이 쉬울까를 계산한다면 두김씨쪽을 택할 가능성이 많죠.
-이번에 주류측이 분당부사까지 외치는 것은 마치 주인이 자기 집을 버리겠다는 것처럼 보여 아무리 생각해도 난센스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70명이 집단 서명한 것도 문제예요. 바람에 가랑잎 날리듯 지난번 민한당붕괴 때 보여진「사이공 최후의 날」을 재연한 신민당의 풍토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언제는 국회의원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이라고 독립성을 강조하더니….
-비록 이름뿐인 직함이지만 2년여 총재비서실장·총재보좌역을 했던 사람들조차 서명에 참여한 것은 인간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 도의의 수준을 의심케 했다는 비난이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당내의 갈등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강제력」을 동원하는 마당에 그 어려운 개헌정국을 대화로 풀겠다는 두김씨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위기가 안좋아지자 주류측에서는 우리가 언제 분당을 얘기했느냐고 펄쩍 뛰면서 부인하기 시작하더군요.
-이번 내분이 이총재의 제한적 양보 비슷하게 수습이 되면 신민당의 직선제 당론은 더욱 강화되고 당내타협의 분위기는 더욱 위축될 것 같군요.
-이번 사태에 대해 여권은 분당이 되든, 수습이 되든 개헌정국은 더욱 어려워져 합의나 합법개헌 모두가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고 보더군요.
-어떤 경우로 매듭이 지어져도 이번 사태는 개헌문제를 정치로 풀수 있는 여지를 좁혔고 여야 대화보다「결단」으로 흐르게 할 가능성을 높였다는 지적들이 있어요.
-복잡한 개헌전략이 얽혀있는 신민당의 이번 내분사태는 당사자들의 정치적 이득계산은 덮어두더라도 개헌정국을 크게 악화시킨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루빨리 복원력을 발휘해 수습의 길에 나서는게 바람직합니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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