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꼴찌의 과학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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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 학생들의 과학 실력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향상은 커녕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국제학력평가연구기구(IEA)가 한국을 비롯한 미·영·일 등 세계 12개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과학교육성취도검사」결과를 보면 국민학교에서는 이들 국가 중 1등인 과학실력이 중학에서는 9등으로 뒤졌다가 고교에서는 꼴찌나 다름없는 11위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 나라는 경제발전을 국가 최우선의 당면 목표로 세우고 이를 위해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제발전은 과학기술의 개발과 활용이 원동력이 됨은 말할 나위 없다.
더구나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격심한 국제경쟁 속에서 경제력을 제고시키고 부를 축적하는데는 과학기술의 개발 이외에 달리 길이 없다. 이것은 일본에서 그 실례를 보고 있지 않은가.
이토록 과학발전의 필요성이 절박한 현실에서 우리의 과학교육이 경쟁국가들 중에서 꼴찌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면 이는 우리의 현실과 장래를 위해 실로 걱정스런 일이다.
과학교육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튼튼한 기초과학의 토대가 있어야만 그것을 활용하고 원용하여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응용이 가능하다. 중·고등학생의 과학실력 저조가 갖는 문제의 심각성은 국가발전의 장래를 좌우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처럼 중·고생들의 과학실력이 뒤떨어지는 이유를 입시위주의 학교교육과 과학교육과정의 획 일 화 운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과학교육의 목적은 공식을 외고 책상위에서 시험지의 답안을 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공식과 원리를 이용하여 일어나는 현상을 실험하고 이를 원용하여 우리생활에 기르는데 있다.
시험지 답안 작성용 암기 위주의 과학교육이란 산 교육이 아니며 죽은 교육이 성취도가 좋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군다나 이것이 획일화된 단일교과서로 해를 거듭함으로써 과학교육의 화석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 나라 과학교육을 산교육으로 바꾸려면 우선 암기위주의 탁상공논 교육에서 실험실교육으로 일대방향전환이 단행돼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배부도 늘려야 하고 실험실습 시설도 확충, 보강해야 한다. 한 학년에 20여 개에 가까운 백화점식 교과목을 과감히 축소하고 과목 안에서도 형식 위주의 나열식 내용을 대폭 정비하여 심도있는 교육의 내실화를 기해야한다.
실험, 실습 시설의 확충을 위해서는 교육투자의 확대가 시급한 과제다. 정부투자사업은 전시적이고 행사적인것에 앞서 이 나라 장래의 대들보가 될 교육 사업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기술입국」을 입으로 떠들면서도 성취도가 세계에서 꼴찌인 과학교육을 하고 있다면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과학교육은 곧 창조교육이나 다름없다. 과학적 참조는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의문을 품게 하며 이를 실험과 실습으로 풀어내어 활용함으로써 가능하다. 공식이나 외고 4지 선다형 답안이나 골라내고 있어서야 세계 꼴찌를 면할 날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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