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 강화돼도 한국 미래는 어둡지 않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6호 18면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세계 정치 질서를 흔드는 엄청난 사건이다. 유럽과 전세계로 변화의 쓰나미를 몰고 올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동자 계급의 불만과 이에 따른 반세계화가 근본적 원인이라 말한다. 이에따라 국제적인 책임을 저버리는 미국의 고립주의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세계 무역을 억눌러 세계 경제를 침체시키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예측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27년 동안, 세계 질서는 자본·재화·사람들의 자유로운 흐름을 지지하는 ‘팍스 아메리카’에 기반하고 있었다. 전세계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든 시장의 세계화를 불러왔다. 결과는 상당히 더 상호의존적인 세계였다. 세계 경제의 엔진은 북미·서유럽·일본에 주로 집중된 상위 억만장자의 소비 지출과 중국의 성장이었다. 개도국이든 선진국이든 대부분의 경제는 미국 에 의존해왔다.


 [극단적 미국 우선주의 실현 가능성 낮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뒤집어질 것이다. 그는 중국 수입품에 대해 45%의 보복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계무역기구(WTO)·북미자유무역협정(NAFTA)·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에서 탈퇴할 것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일본·한국과의 상호방위조약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모두 종합해보면 심히 겁나는 시나리오다. 이런 극단적인 보호주의는 정치적 힘의 균형과 세계 경제를 요동치게 만들면서, 세계무역의 침체와 전세계적 불황 뿐 아니라 1930년대를 연상시키는 정치적 불안정을 낳는다.


이 중 어떤 것도 미국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며, 이런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만약 가능성이 있었다면 세계 시장은 선거 이후 붕괴됐을 것이다. 사실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시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지금까지 사업가 출신 대통령들의 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몇 가지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첫째,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거대한 재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감할 것이다. 둘째, 그의 법인세 인하는 경제 자극에 효과적이다. 셋째, 규제 완화는 미국이 금융의 중심으로 떠오르는데 도움이 된다. 종합하자면 이 세가지 정책은 양적완화와 저금리의 효과를 다시 활성화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경제적 도전이 남아 있다. 예산 적자와 정부 부채는 경기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투자와 감세가 결합된 정책이 부채로 유지되는 지출과 재정적자 없이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계속 사들일지도 불확실하다. 부채 때문에 달러 약세가 오고,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무역의 감소로 적자가 가속화되는 악순환의 우려도 있다.


 [경제 블록보다 쌍무 협정 중심으로 변할 것]


따라서 단기적으로, 그리고 중기적으로 위험 인자가 있다. 트럼프가 그의 많은 위협적인 공약을 모두 실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관세장벽이든 세계 무역을 약화시킬 것이다. 재성장을 모색하는 신흥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한국은 다행히도 수준 높은 제품과 서비스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당장 이런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아 무역 다각화 노력이 갈수록 시급하다.


세계화가 수많은 사람을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줬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또 국가 내에서 빈부 격차를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화가 후퇴할 것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히다. 브렉스트와 트럼프 이후 세계 무역 질서는 EU·ASEAN·NAFTA 같은 지역 블록간 협정보다는 WTO 규칙을 기반으로 한 개별 국가 사이의 쌍무 협정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크다. 쌍무적 무역 협정은 지역 블록의 불합리한 규제들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


한국은 우리 시대의 경제적 기적 그 자체다. 1953년부터 시작해 자유민주적인 세계 질서의 수혜자가 됐다. 한국은 잘 교육받은 노동력과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선진국이다. 긴 역사 내내 강한 이웃들을 다뤄왔고,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이런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회복이 기대되는 반면 미국과 중국의 잠재적인 무역 마찰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부분은 한국이 풀어나가야하는 숙제가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이 일본과 한국에 대한 동맹 관계에 소흘해진다면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안보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한국은 중국·일본·러시아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도 한국에게 또다른 과제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 투자자들은 지금까지 삼성·LG·현대 등 글로벌 기업에게 투자함으로써 국제적 다각화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앞으로는 한국의 연금기금은 해외 투자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코스닥에 상장된 중소 기업은 해외 고객 및 투자자를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을 주시하고 있다. 수출 증진을 위해 원화 가치를 낮추는 쪽에 솔깃할 수는 있겠지만 외국 투자자들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이 국제 질서의 변화와 국내 정치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한국 경제는 감당할 힘이 있다. 지금 안주하고 있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요동치는 바다를 항해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능력과 의지를 갖췄다. 트럼프가 당선 후 처음 한 일들 중 하나가 청와대에 전화한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신호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가 디스토피아에서 멀지 않은 것으로 묘사하지만 한국의 정책 입안자, 기업 및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노릴만 한 좋은 위치에 있다.


로리 나이트전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장옥스퍼드메트리카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