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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성과 높이는 긍정적 감정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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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 22면

토마스 만

소설가(Thomas Mann·1875~ 1955)은 20세기의 ‘가장 독일적인’ 작가로 꼽힌다. 1924년 출간한 소설 『마의 산(魔의 山·Der Zauberberg)』은 그가 192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크게 기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은 1875년 북부 독일의 한자(Hansa)동맹 도시인 뤼베크에서 거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그는 자신의 가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는 삶과 죽음, 시민과 예술가, 정신과 삶이라는 모순되는 가치의 이중성을 작품 속에서 대결시킴과 동시에 양자의 조화를 모색했다. 『마의 산』을 통해 만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1919~1933)의 혼란과 무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그는 당시 유럽인들의 사상적 혼란, 정치적 좌절과 경제 공황 그리고 희망과 탈출을 이 작품에서 그려냄으로써 ‘바이마르공화국의 양심’으로 불리게 됐다.

1 ‘마의 산’은 사실 오늘날 스위스 다보스(Davos)를 품고 있는 산을 말한다

[병과 죽음의 세계서 에로스적 욕망 분출]
장편소설 『마의 산』은 함부르크의 평범한 시민 가정 출신의 대학생인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병 때문에 스위스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그의 사촌을 방문하기 위해 다보스의 요양소를 방문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원래 3주만 체류할 계획으로 떠났다. 그러나 우연히 자신도 폐병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그곳에서 요양생활을 하면서 예정과는 달리 7년이나 머물게 된다. 요양원에서 카스트로프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사귀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클라우디아 쇼사 부인이라는 러시아 여성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는 퇴폐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으나 카스트로프는 그녀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사랑과 죽음, 질병의 세계인 ‘마의 산’위에서 그를 그토록 오랫동안 체류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에로스적 욕망이 병과 죽음의 세계 속에서 분출됐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탈리아에서 온 계몽주의자 세템브리니도 알게 된다. 합리주의자이자 인도주의적 모럴리스트로 자처하는 그는 카스트로프에게 이성과 도덕을 설파했고 병과 죽음의 세계인 요양원에 있지 말고 하산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카스트로프는 쇼샤 부인에게 깊이 빠져있는 터라 세템브리니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느 날 밤, 그는 쇼샤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다음날 산을 내려가 버린다.


그 후 그는 유대인인 나프타를 알게 되는데 그는 독재를 찬양하고 테러를 옹호하며 공산주의적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의 노선은 이성과 도덕을 존중하는 진보주의자 세템브리니와 사사건건 충돌했고 열띤 논전이 자주 벌어졌다.

2 『마의 산』에 등장하는 요양원의 모델이 된 다보스의 샤츠알프 요양원.

마의 산에서 지내던 어느 날, 카스트로프는 스키를 타다가 극심한 눈보라 속에 갇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깨닫게 된다. 인간은 죽음의 세계를 뛰어넘어 사랑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요양원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그의 사촌은 병이 악화돼 사망하게 되고, 하산했던 쇼샤 부인은 성공한 사업가 페퍼코른이라는 남자와 함께 요양원에 나타났다. 카스트로프는 현세적 삶의 달인으로부터 많은 교훈과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얼마 후 페퍼코른은 삶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고 쇼샤 부인은 다시 산을 떠난다.


카스트로프는 허탈상태에 빠졌고 요양원에서는 히스테리 환자가 속출한다. 어느 날 나프타는 세템브리니와 자유에 관해 심한 논쟁을 벌이다가 그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 도중 나프타는 그의 머리에 자신의 권총을 발사해 죽는다. 이 후 마의 산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카스트로프가 7년 동안 산에서 무위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저 아래 세계’에서는 큰 전쟁이 발발했다는 긴급한 소식이 들려왔다.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카스트로프는 드디어 죽음과 질병이 지배하는 마의 산을 내려와 슈베르트 작곡의 ‘보리수(Der Lindenbaum)’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욱한 전쟁의 포연 속으로 사라져간다.

『마의 산』 1924년 초판본 표지.

만의 소설 『마의 산』은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혼란상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의 산 위에는 당시 유럽의 분열과 대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독일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서 안정되기를 바랐고 독일 본연의 위대한 모습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신의 시각을 담아냈는지도 모른다. 카스트로프가 전쟁터에 나가면서 ‘보리수’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은 당시 독일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기쁘고 슬플 때에도 찾아오는 나무 밑…” 이라는 노래 구절이 상징하는 것은, 집을 떠난 나그네가 방황을 끝내고 고향마을의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그늘 밑을 찾아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작가는 혼돈의 시대를 맞아 이제라도 잊고 살던 우리의 긍정적인 옛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독일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건강·웰빙 추구하는 긍정 심리학]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긍정적 심리학 (positive psychology)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긍정적 심리학은 인간 삶의 병폐적 증상과 질병들을 치료하는 데 초점을 둔 과거의 부정적 심리학을 탈피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긍정적 경험, 긍정적 개인의 특질, 긍정적인 제도 등을 발견하여 그것을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긍정심리학은 개인의 건강·복지·행복에 관심을 갖는 관련 심리학들을 통합해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해 잘 대처해 심리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연구하는 심리학이다. 긍정적 심리학의 주창자인 셀리그맨(Seligman)교수는 긍정적 심리학은 개인과 사회의 정신 건강과 웰빙(well-being)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개인의 긍정적 정서와 행동을 촉진하는 것을 학습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긍정적 심리학은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긍정적 심리학은 경영자의 리더십, 경영 의사결정, 협상, 조직변화, 인적자원관리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세계적 초우량 기업들의 교육훈련에서는 직원들의 자신감을 강화시키고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교육훈련은 임직원의 긍정적 감정을 유발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긍정적 감정이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구성원들로 하여금 긍정적 심리상태로 이끄는 요소들로서 학자들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 희망, 낙관주의, 그리고 복원력(resiliency)을 꼽고 있다.


자기효능감은 개인이 주어진 상황에서 특정한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모티베이션과 인지적 자원들을 동원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면, 작업팀의 생산성과 능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자기효능감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더 많은 책임감과 도전적인 과업 부여, 일에 대한 통제감 증가를 위한 직무 설계 역시 직원들의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복원력은 변화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즉흥적인 대응, 유연함, 적응력을 동원하여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적응 기제와 능력을 말한다. 복원력은 좌절이나 정신적 외상뿐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인정하고 정상으로 회복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위험 요소를 오히려 도전 기회로 파악]
충분한 복원력은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다시 균형점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시간, 자원 투자 등을 가능하게 한다. 복원력은 또한 좌절을 겪은 개인들이 원래의 균형점 이상으로 성장하고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복원력이 높은 사람들은 위험 요소들을 긍정적인 요인을 감소시키는 위협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도전의 기회로 파악하여 위기상황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높다. 오늘날 고용, 보상, 기업의 전략, 조직 문화와 구조 등에서 긍정적 심리학에 기초한 성과지향의 조직관행들이 개인 및 조직의 성과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병과 죽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가 거기를 빠져나온 한 청년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그는 마의 산 위에서 ‘죽음의 오솔길’을 체험하고 하산을 한다. 개인과 사회, 자아와 세계 사이의 갈등과 불화를 뒤로하고 그는 현실세계로 내려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성장소설로 평가되기도 한다. 한 젊은이가 모험심을 가지고 죽음과 질병이 지배하는 암울하고 처절한 삶의 현장을 경험하고 거기서 좌절하고 주저앉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기 위한 몸부림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이야기는 최대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맞아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 그리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오늘도 땀 흘리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카스트로프들에게 바치는 위로와 격려의 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스트로프가 보리수 노래를 흥얼거리며 현실세계로 뛰어 들었다면 우리의 청년들에게는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로 시작하는, ‘희망의 나라로’가 어떨까 제안해 본다.


김성국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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