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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이 묻고 김부겸이 답하다] “혁명적 열기만 있는 100만 집회…‘혁(革)’ 그 이후도 생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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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선 특별기획 차기 주자 릴레이 인터뷰 ③

우리 두 사람은 혁명의 열기가 소용돌이치는 광화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원래 이 시리즈는 2017 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로 기획된 것이었는데, 그 기획은 불가불 성격이 크게 전환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선’이라는 것 자체가 전망이 불투명해졌고 하루하루의 현실이 현재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 체제 전체의 근원적인 변화를 시시각각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라는 시공이 종말론적인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을 대선주자로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우환을 같이하는 동지로서 만났다. 우리의 대화는 현 시국의 분석으로 그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첫 만남은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였고, 두 번째 만남은 12일 광화문 100만 인파 속에서였다.

지난 4일 도올 김용옥(왼쪽)과 김부겸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꼬인 정국을 풀 해법을 논의하고 있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계속 버티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지난 4일 도올 김용옥(왼쪽)과 김부겸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꼬인 정국을 풀 해법을 논의하고 있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계속 버티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T 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는데, 우리에게는 11월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달이 되어가는 것 같다. “잔인하다”는 것은 가사 상태를 원하는 현대인에게 산천초목이 다 깨어나는 그 각성을 은유한 것인데, 우리 민중은 이제 다 깨어나지 않을 수 없도록 잔인한 외침에 다 깨어나 광화문으로 모여드는 것 같다. 오늘 100만 인파가 서울의 중심거리를 모두 메웠는데 유례를 찾기 힘든 장관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관망할 것인가?
“나는 평생 데모꾼으로 살아왔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에 학생운동 지도부의 중심멤버로 활약했고 87년 6월 민주항쟁, 노무현 탄핵 반대 집회, 광우병 집회 등 모든 대규모 집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러나 요번 12일 집회는 이전의 어떠한 집회와도 그 성격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우선 과거에는 대체로 대중운동이 야당 정치인들과 결합돼 있었다. 대중 집회 지도부의 핵을 정치인이 형성했으며 그 운동의 궁극적 목표 또한 정치인들의 집권 방식과 관련된 제도적 변화였다. 또한 민중에게는 외재화된 악의 존재를 타도한다는 용감한 일념은 있었지만 막상 자기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문자 그대로 투쟁을 위한 투쟁이었다. 투쟁 그 자체가 절대적인 당위였다. 그리고 시위가 어디까지나 닫힌 공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폭력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 리더십이 소수 정예에게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우선 양적으로 막대하다. 인파를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다. 시위 공간이 행정법원의 현명한 판단으로 사직·율곡로까지 개방되었고 시위 양상이 하나의 센터를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다원화된 모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87년 이한열 열사의 범국민 장례식 노제 때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하지만 그때보다 인파의 규모가 훨씬 더 크다. 더구나 중요한 점은 젊은이의 참여가 많다는 것이고 중·고등학생 또한 성숙한 참여자의 모습으로 대거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그들 또한 명료한 의식으로 우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살아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번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남녀노소, 진보·보수, 여하한 사회적 차별을 불문하고 개개인이 모두 시위 참여의 뚜렷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단순한 정치적 구호를 넘어서 그들 삶의 문제로서 내면화돼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구호 이상의 근원적 삶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요구는 그들 삶의 기나긴 억압, 상처, 억울함, 기만에 대한 분노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다. 그리고 과거 같으면 ‘민란’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적으로 평화적이었다.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의 제고라 할까, 시위 문화의 진화라고 할까, 하여튼 전적으로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역사 국면이다. 그들은 잔인하도록 각성돼 있는 것이다.”
시위자는 거의 전 국민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은 정치인들처럼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저항의 강약에 따라 타이밍을 재면서 어떠한 과도기적 기구를 설정하여 난국을 파국 없이 수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데 반해 국민은 야 뭐 그따위 것 가지고 고민하느냐?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자격을 상실한 박근혜를 하야시켜라! 하야시키고 조기 대선을 치러 하루속히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 광화문으로 집결한 100만 시민이 거의 모두 즉각 하야, 조기 대선의 단순한 틀을 주장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이 즉각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하늘의 마음(天心)이거늘 정치인들 또한 그 하늘의 마음에 부합하는 행동을 조속히 취하여 빨리 그 하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적 정당이란 어디까지나 의회정치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국민의 뜻을 대변하되 그것을 헌정질서 내에서 절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박근혜가 하야했다고 치자! 그러면 국정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현 국무총리인 황교안이 국정을 대행하게 된다. 60일이라는 전제가 있다 해도 국정을 주도할 그는 검찰 출신의 박근혜 사람으로서 박근혜 정책기조를 연장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현 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자꾸만 ‘거국내각’을 운운하게 되는 것이다.”
거국내각이라는 말은 많이 돌아다녀도 국민은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른다. 거국내각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미 지난 4일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첫째 별도 특검과 대통령 수사의 수용, 둘째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수용, 셋째 이 두 개의 조건이 수용 안 되면 정권 퇴진운동에 들어간다. 이때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는 총리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책임총리라는 말이 되는데, 바로 책임총리가 거국내각의 핵심이다. 그 전제조건이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영향력 배제, 즉 국방·외교를 포함한 모든 국정에서 손을 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독립적 책임총리가 구성하는 중립적 내각이 거국내각이고, 거국내각이 들어서야 비로소 특검이 진실된 수사를 할 수 있게 되고, 안정적인 정치 일정을 짤 수 있다는 것이다.”
김부겸 의원의 정치 인생에 생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준 고 제정구 의원(왼쪽). [사진 김부겸 의원]

김부겸 의원의 정치 인생에 생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준 고 제정구 의원(왼쪽). [사진 김부겸 의원]

오늘 길거리에서 나눔문화라는 시민운동단체가 나눠준 플래카드에 쓰여 있는 ‘주권자의 7대 요구’라는 간결하고도 강렬한 메시지는 국민의 열망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1)대통령 즉각 하야, 별도 특검 수사. 2)새누리당 의원 전원 사퇴. 3)관련자 구속, 부당 재산 몰수. 4)정경유착 재벌기업 수사. 5)박근혜 정책 재검토 및 폐기. 6)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 7)세월호 7시간 진실을 밝혀라! 여긴 내 나라다! 이건 우리 삶이다! 다시 말해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기만해 온 엄청난 죄악에 대한 당연한 응보로서 하야와 특검을 요구하고 있고, 동시에 그러한 죄악을 가능케 한 국가 체제,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 내지 개혁, 전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민중에게는 혁명적 열기만 있지, 그 열기를 진정한 민주화의 프로그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도부나 제도적 복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현금의 사태는 민중의 혁명적 열기와 제도정치권의 지도부가 결합되지 않은 특이한 사례다. 그러나 이 두 흐름은 반드시 불신의 벽을 넘어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혁명은 혁(革·바꿈)으로 끝난다. 혁 이후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혁명사가 입증해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관심은 혁 이후의 사태일 수밖에 없다. 혁 이후의 사태에 대한 구체적 복안 없이 혁 그 자체에만 광열할 때 많은 부작용이 뒤따른다. 나는 21세기적인, 보다 성숙한 민주화 프로세스를 갈망한다. 그 핵심은 역시 기존 권력과 단절된 책임총리와 중립내각을 우선적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위대한 인격의 총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시국은 또다시 지리멸렬해지고 격렬한 대립 국면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박근혜는 어떠한 경우에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인격체라는 것이 중론이다. 박근혜는 자기의 위상이 국민이 뽑아준 자리이며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성을 보장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전두환이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그 위상이 불법적이었다고 규정된 상황과는 다르다. 계속 버틴다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물론 계속 100만 인파가 모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100만 인파의 함성은 항존한다. 점점 적게 모이고 시간을 끌게 되면 점점 정예화되고 격렬해질 것이다. 폭력적 대치 상태에 이르게 되면 박근혜는 불쌍한 파국에 이르게 된다. 나는 인간 박근혜에게 니체가 말하는 르상티망(원한)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다. 르상티망은 우리 역사에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을 일으킨다.”
대구·경북(TK) 지역 출신 의원이라는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는 것인가? 대구 송현여고 조성혜양의 애타는 목소리를 못 들었는가?
“정치인으로서 나의 지역적 한계는 물론 있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경계인적 입장은 한국 정치의 정의로운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입각점이기도 하다. 나는 체질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삼학사의 대책 없이 완고한 주자학적 주전파 논리보다는 화의론을 펼친 양명학자인 최명길의 보다 현실적인 유연한 입장을 존중한다. 이념적 가치에 있어서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민중의 현실을 항상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다. 혁명정권이 반드시 민중의 기대에 부응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이 진정 원하는 새로운 삶, 새로운 의식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요번 12일 100만 집회로 이미 박근혜의 실제적 명줄은 끊어진 것이다. 하늘은 더 이상 박근혜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지 않는다. 국민의 새로운 열망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거국내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거국내각의 정립과 바른 진로를 위해 야당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박근혜가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당이 전면 퇴진운동을 전개한다면 나는 모든 기득권이나 자아를 벗어던지고 거리투쟁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거리투쟁과 냉엄한 국회투쟁은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 이 긴박한 파국에 미국은 왜 가나?
“국회 동북아평화협력의원외교단의 일원으로서 가는데 중요한 사실은 여야 3당이 같이 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한 당 의원들만 오면 대접을 안 하는데 여야 의원이 같이 오면 정중히 대접한다고 한다. 평상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까지도 만나게 될 것이다.”
긴박한 역전의 대선 형국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진영과 커넥션이 빈곤했을 텐데 그쪽 사람들을 만나는가?
“유력한 차기 국무장관 감이라고 하는 미국외교협회(CFR) 회장 리처드 하스, 보수주의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전 이사장 에드윈 퓰너, 그리고 상·하원의 공화당 지도자들을 만난다.”
현재 트럼프의 한국관은 백지 상태라 말할 수 있다. 트럼프의 기존 사고 성향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논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트럼프의 의식세계 속에 명료한 한국상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명백한 사실은 트럼프는 이념적 성향의 사람이 아니며, 매파도 아니며 비둘기파도 아니다. 미국의 국익과 실리를 우선시한다는 실용주의만 있다. 이러한 정황은 오히려 우리에게 ‘평화의 이니셔티브’를 선포할 절호의 기회다. 대한민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동포로서 포용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북한을 선도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태까지 우리 정치가 북풍이라는 허구로써 국민을 억압해 오기만 했기 때문에 미국의 한국관이 잘못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발언을 일사불란하게 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 젊은 의원들 사이에 핵무장론이 널리 유포돼 있다는데.
“남한의 핵무장은 NPT(핵확산금지조약·68년에 비준된 국제조약)의 탈퇴를 전제로 한다. 그러면 당장 국제적 제재를 당하고 무역을 할 수 없다. 북한은 NPT를 탈퇴할 수 있었지만 우리와 같은 고도의 경제대국은 그런 바보짓을 감내할 길이 없다. 그것은 일본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며 동북아 전체를 자멸의 길로 이끌 뿐이다. 나와 같이 가는 정병국 의원이나 나경원 의원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국 박근혜 정권의 궁극적 문제는 세계의 정치판도 속에서 한반도의 위상을 잘못 설정한 데 있다. 반공이라는 종교 속에 국가를 중세기적 몽매 속으로 가두어 버린 것이다.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눈부신 활약이 눈에 띈다.
“아베는 곧 트럼프와도 직접 만난다. 이뿐만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과도 자유롭게 자주 만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동해항에 LNG기지를 건설해놓고 있으며 트랜스 시베리안 레일로드, 트랜스 차이나 레일로드 건설을 통해 세계 물류의 중심축이 될 꿈을 꾸어왔는데, 아베가 푸틴과 만나 북방 4도의 영토 문제를 운운하며 새로운 개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우선 사할린에서 직접 일본까지 가스관을 묻는다고 한다. 그게 불과 8㎞밖에 되지 않는다. 간단히 우리가 배제되는 거다. 그러면 우리 한국인의 꿈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일시에 사라진다. 일본은 우익조차 세계의 주도권 경쟁에서 선두 역할을 하는 효율적 세력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한국인의 꿈은 최순실로 대표되는 정계-재계-언론계의 농간 속에 갇혀 있었다. 박근혜 용퇴의 정당성은 바로 8·15 해방 이후부터 우리를 짓눌러온 우익보수집단의 족쇄로부터 이 민족을 해방시킨다는 데 있다. 박근혜가 미적거리고 있는 동안 망가지는 것은 이 땅의 민중의 민생이다. 애석하지 아니한가!”

박근혜 이미 명줄 끊어진 상태
계속 버티면 나도 거리투쟁 나설 것
더 성숙한 민주화 프로세스 필요
그 방법은 책임총리와 거국내각

기획·진행=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김포그니 기자 glutton4@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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