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해야 할 학제개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모든 교육제도가 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학제개편만큼 찬반논의가 분분한 문제도 드물다. 6·3·3·4의 미국식 학제가 우리 여건과 현실에 맞느냐는 논의가 그동안 수없이 제기되었다가 흐지부지된 까닭도 어떤 제도건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있어 뚜렷하게 이것이라고 결론을 내릴수 없기 때문이었다.
개편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현행학제가 오늘날의 교육여건및 사회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교육개혁심의회가 마련한「학제개혁안」은 그동안 제기된 여러 의견을 광범하게 수용한 결론인것 같다.
교개심 개혁안은 첫째 유치원을 공교육화하는 대신 국민학교 기초과정을 5년으로 줄이고,둘째 고교과정을 4년으로 늘리되 2년수료후 치르는 예비고사 결과에 따라 대학에 진학할 학생과 취업할 학생을 선별하는등 진로지도를 강화한다는 두가지 특징을 갖고있다.
그중에서 유치원 교육을 공교육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조기교육이 세계적 추세임에 비추어 수긍이 간다. 옛날에 비해 지능이 일찍 발달하는 어린이들을 방치하지않고 교육체제속에 넣어야 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당연한 요청으로 받아 들여져 왔다. 국민학교 과정의 1년 단축도 기초 학력이나 기초 소양없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등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학교 1학년 과정을 사실상 유치원 교육과정이 흡수하고 있어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고교과정을 4년으로 늘리는 문제는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두말할것도 없이 고등학교는 진로선별이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현재의 학제는 단선형이면서 실제는 복선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문계건 실업계건 일단 진학을 하면 횡적인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교개심의 개혁안은 고교 2년을 수료한뒤 진로선별을 위한 예비고사를 치르고,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진로설정을 철저히 하자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유럽식 학제는 중학 졸업후 대학진학 그룹과 직업교육 그룹으로 분리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유립처럼 신분차이를 묵시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아닌 이상 그런 제도의 도입은 사실상 쉽지 않다.
교개심 개혁안은 말하자면 미국식 학제의 장점과 유럽식 학제의 장점을 고루 취해서 교육기회를 최대한 확대하고 고교과정에서 보다 괌범한 진로선택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더우기 평생교육 체제를 지향하는 국내외의 흐름등 급변하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개인적 요청을 수용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는 해봄직하다.
다만 학제개혁은 시간과 노력, 예산과 행정력의 동원및 정착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가지 혼선등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소요되는 노력을 운영의 합리화를 통해 극복할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도 사전에 충분히 살펴야 한다.
비록 새로운 시도가 타당성이 있고 해봄직하다는 합의가 있다해도 개혁을 위한 개혁이란 비판을 듣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연구·실험·평가와 단계적인 이항조치는 물론 단계마다 졸속에 흐르지 않도록 세심한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교육은 국가 백년지계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교육제도는 항상 근시안적이고 현실 영합적인 개편만을 일삼았던 과거의 타성은 이제 벗어나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