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행진」과 원천봉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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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종철군 49재 행사의 하나인「3·3민주화국민 평화 대행진」을 하루 앞두고 정국은 다시금 긴장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이번 행사를 정략적 혼란 유발행위로 규정하고 공권력을 동원, 「원천봉쇄」한다는 방침이며 신민당과 재야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번 행사를 강행하겠다는 자세다.
정치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힘과 힘이 맞부닥치는「몸싸움」의 현장을 국민들은 싫건, 좋건 또 한번목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권양 성고문 폭로대회때, 작년11월29일의 신민당 개헌추진대회 때, 그리고 지난달 7일의 박군 추도대회때의 그 삭막한 광경이 거듭벌어질 모양이다.
시위자들이 몰리는 곳마다 충돌이 빚어질 것이며 전경들이 쏜 최루탄으로 시민들은 또 눈물을 흘리게될 것이다.
야쪽에서 할 말이 많다면, 여쪽에서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세울수는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야권이 박군 사건을 정권탈취의 기회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면 공권력을 통해 행사자체를 봉쇄하면 했지 정권을 내놓으려 들지는 않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어느쪽 주장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여야의 대치상황이 어떻게 이처럼 한치여유도 없이 각박하게만 돌아가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미 여러차례 보아온대로 행사의 주요 참가자들을 가택연금하고 시위자들이 집결지마다 경찰력을 투입하면 행사는 어쩌면 무산될수도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될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박군의 죽음은 온 국민을 분노와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이를 애도하려는 충정은 비단 그의 죽음을 슬퍼해서 뿐 아니라 다시는 그와 같은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해서 정국을 온통 초긴장으로 몰아넣고 대회강행과 원천봉쇄로 맞서 국민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은 없다는 말인가.
물론 1차적인 책임이 칼자루를 쥔 쪽에 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건을 일으킨쪽은 공권력인데 무작정 공권력을 행사해서 대회를 못열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 보다는 억지쪽에 가깝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기본권의 핵심적인 일부라는 점은 그렇다 치고라도 순수한 추도모임 마저 불법시하는 것은 공권력의「과잉행사」임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리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는 효험을 발휘한다 해도 이를 통한 해결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일수 없다는 점은 이미 보아온 일이다.
지금 여야는 개헌문제를 둘러싸고 끝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있다. 그러나 개헌은 그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개헌을 통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자는데 목적이 있다.
인권상황의 획기적인 개선을 비롯해서 정통성 시비의 종결을 통한 참다운 정치안정의 조건을 충족시키자는 과제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솔직이 말해 국민들은 힘과 힘의 극한대치나 그런 식의 문제해결 방식에는 이제 지칠대로 지쳤다. 힘으로 밀어 붙이는 것은 나름대로 효험이 있겠지만 너무 자주 쓰면 점차 약화되고 종국에는 아주 쓸모가 없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한다.
되풀이 강조하지만 여야간에 더이상「힘」을 통한 일방통행식 문제해결 방식에 집착하면 국민들의 외면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식이 주권자로서의 권능행사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숙했으며, 모든 정치문제 해결의 열쇠는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있다는 점을 여야간에 직시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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