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길라임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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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청담동 차움의원의 에스컬레이터는 2층까지만 운행하고 있었다.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로 한 층 더 올라가려 하자 직원이 다가왔다. “여기서부터는 회원님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박 대통령 ‘병원 가명’ 풍자 봇물
온라인서 ‘근라임’ 새 별명 붙이고
대역배우인 주인공 직업도 화제
차움의원 실제 ‘시크릿가든’ 있어

회원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하자 직원은 에스컬레이터의 작동 버튼을 누른 뒤 3층에 마련된 상담석으로 안내했다. 마사지 10회 패키지 회원가가 최소 400만원이었다. 5~7층에 있는 야외수영장과 사우나·피트니스 센터 등을 이용하려면 회원 가입비가 1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결국 16일 오후에 차움 5층에 있는 실내 정원 ‘시크릿가든’의 실물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6년 전 큰 인기를 끈 드라마의 제목 ‘시크릿가든’과 같은 이름이다. JTBC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그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 이름인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특별 서비스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직원에게 “요새 병원이 좀 유명해진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직원은 “저도 뉴스 보고 알았어요. 좋게 말하면 노이즈 마케팅이 된 거죠”라며 웃었다.

비슷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시크릿가든’ 속 길라임(하지원)의 팔 문신과 미르재단 로고(위). 아래는 길라임 얼굴에 박근혜 대통령을 합성한 사진.

비슷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시크릿가든’ 속 길라임(하지원)의 팔 문신과 미르재단 로고(위). 아래는 길라임 얼굴에 박근혜 대통령을 합성한 사진.

온라인에서는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게시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네티즌들은 박 대통령의 이름 가운데 글자인 ‘근’과 길라임의 ‘라임’을 조합해 박 대통령에게 ‘근라임’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또 드라마 속 인기 대사를 이용해 패러디 글을 만들었다. 극 중 남자 주인공(현빈)의 유행어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는 “이게 최순입니까? 확siri해요?”로 바꿨다.

지난 4일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한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발언은 “이러려고 길라임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로 패러디됐다. 길라임 역을 맡았던 배우 하지원씨가 정부가 작성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네티즌들은 “하늘 아래 두 명의 길라임이 존재할 수 없지 않겠느냐” 등의 조롱 섞인 글을 올렸다. 남자 주인공인 현빈씨가 현충일 추념식(2015년) 등 여러 정부 행사에 참석했던 과거사가 함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드라마 속 길라임의 직업이 대역배우라는 점도 화제가 됐다. 최순실(60)씨가 대통령의 대역처럼 행동한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에서다. 16일 내내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 ‘길라임’과 관련된 말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한 네티즌은 “풍자 글에 웃고 있긴 하지만 마치 폐허 위에서 웃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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