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민에 「희망」을 심어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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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마닐라의 봄」이 찾아온지 25일로 꼭 1년.
이 1년은 숱한 도전과 시련으로 점철된 한해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쿠데타설, 그리고 실제 있었던 3차례의 쿠데타기도, 공산세력의 줄기찬 도전, 「마르코스」추종자들의 계속되는 반정부시위, 「엔릴레」전 국방장관 등 보수세력의 반발, 20년 독재가 남겨놓은 피폐된 국민경제와 빵을 해결해 달라는 국민들의 요구들이 「아키노」정부를 괴롭혀왔다.
지난 1년간 전개돼온 필리핀 정치상황을 살펴보면 필리핀의 민주주의 승리는 바로「아키노」의 승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뚜렷한 정치적 기반도 없이 가정주부의 위치에서 일약 권좌에 올랐던「아키노」대통령정부의 앞날을 두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우려를 표명했었다.
그러나 「아키노」대통령은 6개월도 못 갈 것이라는 우려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국민화해와 평화정책을 앞에 내걸고 민주화 작업을 착착 진행시켜왔고, 또 진행시키고 있다.
집권하자마자 투옥중이던 필리핀공산당(CPP) 창설자인 「호세· 마리아·시손」 공산군사조직인 신인민군(NPA) 창설자 「베르나베·부스카이노」등 1급 사상범 4명을 석방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든가 잇단 쿠데타기도에도 불구하고 그 주동자를 처벌하지 않았던 것에서 국민화해와 단합을 위한「아키노」대통령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태도 때문에 나약하다든가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었다.
「아키노」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그녀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필리핀 국민이 정부를 믿고 앞으로의 상황이 더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갈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갖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필리핀 국민의 희망과 확신은 18년간 내전을 치르고 있는 신인민군(NPA)의 공산세력을 평화테이블로 끌어들였고 계속되는 쿠데타음모가 실패로 돌아가게 했다. 「아키노」 대통령정부의 앞날에는 지금까지 헤쳐온 것보다 더 험난한 난제들이 놓여있다.
우선 해결해야 될 난제중의 난제가 공산세력과의 18년간에 걸친 내전을 종식시키는 일.
작년 11월말 민족민주전선(NDF) 측과 극적인 타결을 보아 12월10일부터 금년 2월8일까지 60일간의 휴전을 성공시켜 일시적인 평화를 맛보았지만 1월22일 발생한 「멘디올라교의 살상」이라는 돌발사태로 NDF측이 1월6일부터 재개된 정부측과의 평화회담을 포기하는 바람에 또다시 충돌하고있다.
멘디올라교의 사건당시 필리핀 농민들이 요구했던 토지개혁실시와 「마르코스」독재가 남겨놓은 피폐된 국민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것도 「아키노」정부가 해결해야 될 난제중의 하나다.
작년 9월과 11월 미국과 일본을 방문해 1억7천만달러와 2억2천만달러의 경제원조를 약속받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4백달러선에 머물고 5천4백만 인구 중 60%가 절대빈곤층인 현재의 경제상태를 호전시키기에는 부족하다.
더우기 「아키노」대통령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 민주주의와 자유를 획득한 필리핀국민들이 다음에는 빵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해 올것이 뻔하다.
「아키노」대통령이 시급히 해결해야 될 또 하나의 문제는 공산세력과의 화해정책에불만을 품고 있는 군부의 지지를 얻어내고 단합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지난 국민투표에서 보여주었듯이 필리핀군중 절반 가량이 반대표를 던져 「아키노」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분명히 했고 최근에는 민중혁명 1주년을 전후해서 또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그러나 국민투표를 통해 92년6월말까지 임기를 보장받은「아키노」대통령은 지금보다 더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필리핀민주화작업을 실천에 옮길 것이라는 것이 마닐라 정치분석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오는 5월11일 실시되는 신헌법 아래에서 첫 국회의원총선, 그리고 8월로 예정된 지방공무원선거가 「아키노」정부의 앞날을 가름하는 첫번째 시금석이 될 것이다.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엔릴레」전 국방장관 등 야당세력의 세찬 도전이 벌써부터 뜨거워지고 있지만 「아키노」대통령의 인기가 계속되고 쿠데타 등 돌발사태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안정을 바라는 필리핀 국민들의 현재의 태도를 보아 「아키노」대통령의 승리가 틀림없다 하겠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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