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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 선물하는 행복에 푹 빠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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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조슈아 벨은 파리발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이륙 직전 전화 인터뷰를 했다. 한 해 150회 연주를 하며 뉴욕에서 세 아들을 키우는 바쁜 연주자다. [사진 조슈아벨 홈페이지]

조슈아 벨은 파리발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이륙 직전 전화 인터뷰를 했다. 한 해 150회 연주를 하며 뉴욕에서 세 아들을 키우는 바쁜 연주자다. [사진 조슈아벨 홈페이지]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49)에게 수식어를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줬다. 11일 전화인터뷰에서다. ‘유명한’ ‘세계적인’ ‘잘생긴’에서 시작해 ‘록 스타’ ‘밀리언 셀러’ ‘그래미 수상자’까지 선택지는 다양했다. 좀 더 구체적인 것도 있었다. ‘공연 표를 매진시키는’ 또는 ‘몸값이 가장 비싼’ 등이다.

15일 대구, 16일 서울서 연주회
한 해 150회 공연하는 클래식 스타
한국무대선 멘델스존 협주곡 연주

벨은 “그 모든 수식어가 상자와 같다”며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세상이 붙여준 수식어를 계속 가지고 가면 마치 상자 안에 갇히는 것처럼 나올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벨은 14세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카르토 무티와 함께 공식 데뷔해 이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협연자 기록을 세웠다. 지금껏 소니뮤직에서 음반 30여 장을 냈고 데뷔한 지 30년이 넘은 요즘도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연주자다. 한 해 연주만 150회. 이틀에 한 번꼴로 전세계 무대에 오른다. 그는 “수식어에 갇히지 않으려면 새로운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휘로도 영역을 넓혀 2011년엔 영국 오케스트라 세인트마틴인더필즈의 음악감독직을 맡았다.

단지 무대 위에서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음악 교육이다. 그 중에서도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 음악과 예술을 접해보지 못한 학생들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인디애나 대학에서도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일년에 겨우 몇번 밖엔 가지 못한다. 대학에선 나이가 더 든 후에도 학생을 키울 수 있다”며 “대신 낙후된 지역의 아이들에게 음악 을 전하는 데에 더 주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의 비영리재단 ‘에듀케이션 스루 뮤직(ETM)’의 이사로 7년 전 합류했다. “뉴욕 학교 중 절반 이상에서 음악 교육이 사라졌다. 비극이다. 이 곳에 음악 교사를 보내 리듬부터 시작해 악기 연주까지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가보면 부모가 둘 다 있는 학생이 거의 없다. 부모 중 한 명은 감옥에 있거나 약물 중독이다. 그런데 악기를 연주할 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에게는 자랑할 거리가 생긴다. 누구나 자랑스러움을 느낄 자격이 있지 않나.”

유명인사를 초청해 ETM 기금 모금 공연을 여는 것도 그의 일이다.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 타미 힐피거, 배우 메릴 스트립 같은 유명 인사가 청중으로 초청돼 아이들의 후원자로 나선다. 벨은 “재단이 아이 한 명에게 음악 교육을 시키는 데 필요한 돈은 115달러(약 13만원)이다. 이 돈으로 한 명의 인생이 바뀐다”며 “공연으로 바쁘지만 재단의 기금 모금 콘서트를 더 늘릴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 활동을 “음악이 사라지고 침묵만 남은 동네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되돌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빈곤이 아이들에게서 음악과 예술을 가장 먼저 빼앗아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얘기다. 음악회를 열 때 주변 학교의 학생들을 리허설에 무료로 초대하고, 공연이 끝나면 로비에서 젊은 청중을 만나 이야기해온 것도 10여년 전부터다. “내 삶에서 음악이 어떤 영감을 줬는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들도 그 행복을 느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의 예술·인문 대통령 위원회에서도 1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의 멘토가 되는 ‘턴어라운드 아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소외됐다고 여겼던 학생들이 예술가·유명인들과 만나면서 사회와 연결고리를 가지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과 교류하고 그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 무대 위에서 좋은 연주를 한 후 느끼는 감동보다 더 큰 행복을 만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트럼프 정부에서도 지속되는 것이 바람이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세상이 이성적으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벨은 파리 오케스트라(지휘 다니엘 하딩)와 함께 한국을 찾는다. 15일 오후 7시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1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들려준다. 그는 “너무 유명해서 마치 ‘학생 협주곡’이 된 것 같은 이 곡이 사실은 얼마나 걸작인지를 들려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15년 전 본인이 작곡한 카덴차도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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