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회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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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 방송이 회갑을 맞았다. 일제 치하이던 1927년 2월 l6일 라디오 방송의 첫 전파를 발사한 경성방송국 (JODK)이래 그 역사가 어언 60년에 이른 것이다.
인생에서는 60의 나이를 「이순」이라 해서 생각하는 것이 두루 원만하고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하는 경지라고 했다.
우리 방송의 실상은 어떠한가. 이 날을 맞아 다양하고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는 마당에 온 국민이 뜻을 모아 축하를 보내고 흔쾌히 참여하고 싶을 만큼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일까.
우리 방송은 광복과 동난, 그리고 그 이후 현대사의 격동기를 헤쳐오면서 갖은 수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날과 같은 거대하고 막강한 기구와 시설 및 영향력을 갖추게 된 건 사실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세계 어느 선진국 방송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일부 프로그램에서도 질적인 수준향상이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이루어 놓은 성과보다는 내재하고 있는 문제가 더 많고 심각한 우리 나라 방송현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째 공영방송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하고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방송은 80년]월 방송통폐합 조치를 계기로 이른바 공영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후 7년이 지나도록·공영화는커녕 상업방송 시대를 무색케 하는 운영과 제작·편성 태도를 지속하고 있다.
시청료를 훨씬 상회하는 광고료수입에의 의존과 사치, 낭비, 위화감을 조장하는 일부 드라마와 쇼·오락프로의 집중제작 등이 그 실례들이다. 교양프로의 비중은 통계적으로는 높였으면서도 교묘하게 편성에서 소외시킴으로써 인기 오락프로의 시청률 경쟁에 혈안이 돼있다. 과연 공영방송이 할 일인가 묻고 싶다.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드는 교양물도 대부분 관광성이나 정부정책 홍보성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보도의 공정성 문제다. 이 문제는 2·12 총선 방송에서 절정에 올라 국민의 심한 반발에 부닥쳤고 급기야는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폭발했다. 그러나 결과는 시청료를 일반공과금에 통합해서 납부하도록 강제화 한 이외에는 별다른 성과 없이 편파성 시비는 여전하다.
우리 방송이 명실 상부한 공영화를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운영·제작·편성 등 모든 체제가 자율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외부의 간섭 없이 방송책임자와 담당요원들의 양식과 양심에 입각해서 운영되고 제작·편성되는 자율기능의 확립이야말로 공영화의 대전제일 것이다. 이 전제가 실현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기술, 거대한 물량의 프로그램을 쏟아 붓는다 해도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방송이 독과점에서 탈피하여 다원화하는 것도 과제다. 국민소득의 증대와 계층의 다양화가 확산되는 우리사회에서 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경제성장에 따라 증가하는 광고수요의 소화도 한계에 와 있다.
프로그램 하나에 10여개의 광고가 폭주하는 현상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KBS한 매체가 별다른 특성도 살리지 못하면서 3개의 TV채널과 9개의 라디오 다이얼을 독점하고 있는데는 무리가 없을 수 없다.
한국방송이 회갑을 맞은 시점에서 부끄러움 없이 그 연륜과 이력에 어울리는 성숙한 기능과 역할을 다 할수 있기를 비는 마음에서 고언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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