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100만의 함성] 집회참가자 경찰 추산의 허와 실…눈에 보이는 건 ‘최소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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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최순실 국정농단에 항의하는 도심 집회를 앞두고 집회 참가자 수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경찰과 주최 측이 내놓는 참가자 수치가 항상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12일 참가자 규모도 주최 측은 최소 50만~최대 100만 명을, 경찰 측은 17만 명을 예상했다.
향후 정국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수 있는 숫자여서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데,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양측의 차이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유료 놀이공원처럼 입장객을 일일이 세지 않는한 정확한 집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노벨상 '페르미'에서 따온 추정법

경찰은 참가자 규모를 '페르미 추정'으로 계산한다.
참가 인원이 가장 많은 시점을 기준으로 특정 면적(1평) 내 인원 수(6~9명)를 계산한 뒤 전체 광장 면적(약 1만평)으로 환산하는 게 골자다.

페르미 추정법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의 이름에서 따왔다.

게스티메이션(Guesstimation)이라는 별칭처럼 추론으로 실제 값을 측정하는 것이다.
주어진 문제를 기초적인 지식과 논리적 추론만으로 짧은 시간 안에 대략적인 근사치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일례로 “서울 시내 영화관 수는 모두 몇 개일까”, “우리나라에서 1년 간 팔리는 치킨은 모두 얼마치일까” 등을 신속하게 계산하는 기법이다.
따라서 정확도 보다는 추론의 과학성과 합리성을 따지게 된다.
기업 채용이나 퀴즈 프로그램 등에서 이처럼 단번에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시해 우열을 겨루기도 한다.

"문제 잘못 읽은 페르미 추정"

그런데, 경찰의 추정치는 엄밀히 따지면 '문제를 잘못 읽은' 페르미 추정이다.
경찰이 설명하는 페르미 추정은 ‘촛불집회에 사람이 가장 많았을 때의 인원은 몇명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이다.
집회에 참가했다가 최대치에 이른 시점에는 자리를 비운 참가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경찰을 무작정 비판하기도 애매하다.
누가 집회에 참가했다가 돌아갔는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경찰의 추정치에는 집회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행인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우연히 그 장소를 서 있는 시민들도 포함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건 '최소값'"

주최측은 집회에 참가한 연인원을 계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게 상식에 더 부합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주최측 역시 누가 들고났는지 그 숫자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양측이 모두 인정할 만한 새로운 페르미 추정을 고안해 내거나, 첨단 과학 기법을 동원해 실측을 해야 모두가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수치가 나올 수 있다.

이같은 한계 때문에 최근 부산 해운대구는 내년부터 해운대 해수욕장 인파 집계를 페르미 추정법 대신 휴대전화 위치확인(스마트 셀 분석) 방식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주요 시간대별로 드론을 띄워 사진을 찍어 계산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참가 인원 수 공방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정부에 반대하는 광장 정치는 시작이 됐고, 그 메시지는 참가자 숫자와 무관하게 선명하다는 것이다.
어쨋든 현 시점에서는 새로운 페르미 추정을 위한 두 가지의 가설만은 확실하다.
광화문 광장은 가득 채워지고 있고, 그 시각 눈에 보이는 군중은 '최소값'이라는 점이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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