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 가슴을 적신 책 한 권] 다시 볼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그래도 살아갈 힘을 주는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208쪽, 1만2800원

도무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차선책은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드는 것. 책장에 꽂혀있던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꺼냈다. 책갈피 여러 군데 색색의 접착식 메모지가 붙어 있다. 전에 읽었을 때 그만큼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많았다는 뜻이다.

첫 문장은 이렇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여기서 두 가지를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물론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의 만남을 의미할 수도 있고, 한 사람과 한 세계의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 책 전체의 독특한 구성을 설명하기에도 어울린다. 이 책 속에는 서로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몇 개의 이야기가 각각의 장 안에 담겨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비상의 죄’, ‘평지에서’ 그리고 ‘깊이의 상실’이다. ‘비상의 죄’는 비행기구의 개척자이자 사진가였던 나다르를 비롯한 기구 조종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추락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이기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인물들이다. 아름다운 것 못지않게 불온하고, 오늘날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 듯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무위로 하거나 원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명백한 변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반스의 관심은, 지금은 사라졌어도 세상에 실재했던 이가 남긴 흔적과 자취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에세이가 실은 사랑을 잃은 자, 혹은 전부를 잃은 자의 비통한 애가(哀歌) 임을 알게 되는 것은 마지막 장인 ‘깊이의 상실’에서부터다. 줄리언 반스는 사랑하는 아내이자 작업의 동반자였던 팻 캐바나를 뇌종양으로 잃은 뒤 5년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심경을 밝혔다.

‘우리는 30년을 함께 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심장이 멈추면 생명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에세이는 어떻게든 그 감정의 죽음으로부터 스스로를 살려내기 위한 작가적 투쟁의 산물일 것이다.

개인적 고통을 고백하고 그 고통을 성찰하는 과정을 겪으며 그의 영혼은 조금 편안해졌을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힘들다는 사실을 감추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별의 고통을 함께 나눌 이’가 더 이상 곁에 없다고 할 때 그 고독의 깊이가 아프게 다가온다. 작가는 마침내 혼자 남았지만 혼자 남은 게 아니라는 결론에 당도한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것이다.

비단 사별만은 아닐 것이다. 사는 동안 맞닥뜨려야 하는 여러 종류의 영원한 이별 앞에서 줄리언 반스의 마지막 전언은 적지 않은 위로가 될 것 같다. ‘그 모든 건 어디선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예기치 못한 산들바람이 불면서 일어난 일일 뿐이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다시 살아가야 하므로.

정이현 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