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바람 뚫고 284m, 장타왕 박찬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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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얏!”

JTBC골프 , 4대 종목 스타 8명 초청
이틀간 장타·매치플레이 대결 펼쳐

김선우 244m 쳐 야구팀 장타 1·2위
키 195㎝ 배구 신선호 233m로 3위

“홀에 공 넣는 골프, 농구랑 비슷해”
김승현·양희승, 매치플레이 우승

박찬호가 고함을 지르며 드라이브샷을 날렸다. 골프공이 너무 빨리 날아가 캐디들도 보지 못했다. 공은 궤적 촬영을 위해 페어웨이에서 설치한 카메라를 넘어갔다. 캐리(런을 제외한 날아간 거리) 284m(약 310야드)가 나왔다. 맞바람을 뚫고 나간 거리다.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4대 스포츠 스타들이 골프로 일합을 겨뤘다. 선수들은 8~9일 충남 아산의 아름다운 골프장에서 열린 JTBC골프 ‘레전드 빅매치’에서 매치플레이 대결을 펼쳤다. 야구에서는 박찬호(43)와 김선우(39) MBC 해설위원, 축구에서는 유상철(45) 울산대 감독과 이천수(35) JTBC FOX 3 해설위원, 농구에서는 양희승(42)과 김승현(38), 배구에서는 신진식(41) 전 삼성화재 코치와 신선호(38) 성균관대 감독이 참가했다.

대회는 4개팀이 9홀 팀매치플레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열렸다. 8일 열린 4강전에서 야구팀은 배구팀을, 농구팀은 축구팀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오후에 치른 장타대회가 백미였다. 소문난 장타자 박찬호는 “내가 먼저 친 뒤 공이 페어웨이에 들어가면 그냥 (내가 우승한 것으로) 끝내,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다른 사람도 치는 것으로 하자”는 농담을 했다. 박찬호를 위협할 선수로는 축구의 유상철과 농구의 양희승이 꼽혔다. 양희승은 장타대회 전 골프장 내에 설치된 스크린골프에서 캐리 거리 약 245m를 기록했다.

그러나 실제 장타 대회에서는 긴장감 때문인지 그만큼 실력을 못냈다. 양희승은 221m, 유상철은 230m를 날려보냈다. 1m95cm로 참가자 중 최장신인 배구의 신선호가 233m를 기록했다. 그러나 장타력에선 야구팀이 압도적이었다. 김선우가 244m로 다른 종목 선수들을 한 번에 추월했다. 마지막 타자는 박찬호. 처음 268m를 쳤으나 페어웨이를 벗어났다. 박찬호의 기회는 단 한 번 남아 있었다. 박찬호는 괴성을 지르며 두번째 티샷을 했고 공은 까마득하게 날아갔다. 너무 멀리 날아가 페어웨이를 넘어갔는데 주최측은 이를 인정하기로 했다.

계측을 한 트랙맨 코리아 관계자는 “맞바람을 감안하면 캐리 300m 정도를 기록한 것인데 이런 거리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내리막 경사에 구른 거리(런)까지 포함하면 실제 거리는 340m 정도가 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박찬호는 “제대로 걸렸다”면서 흐뭇해했고, 저녁 회식에서 쇠고기를 참가자들에게 샀다. 기자가 “장타가 좋은가, 우승이 좋은가”라고 묻자 “투수가 시속 100마일의 공을 던지는 것과 승리투수가 되는 것 중 무엇이 좋은가”라고 되물었다. 장타보다 이기는 것이 더 좋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농구와 치른 결승전 마지막 홀에서 야구팀은 한 홀 차로 앞선 상태였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는데 박찬호는 평소 보다 강하게 티샷을 하다가 OB를 냈다. 이 홀에서 패하면서 연장전에 들어갔고, 결국 농구팀에 졌다.

박찬호는 “어제 9번 홀에서 이글을 했다. 오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앞서가고 있을 때 더 침착해야 했는데 욕심을 내 OB가 났다. 이 욕심을 참는 게 실력인데 아직 모자란 다. 마음이 쓰리다”고 말했다.

농구팀 김승현이 가장 안정된 실력을 보였다. 김승현은 “골프는 멀리치기가 아니라 홀에 넣는 게임이다. 농구도 바스켓에 넣는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김승현은 “생애 최저타 기록은 4언더파 68타”라고 귀띔했다.

참가한 스타들은 야구선수들의 장타력을 인정했다. 양희승은 “일반적으로 농구 선수가 키가 더 크지만 야구 선수가 훨씬 멀리 치더라”고 말했다. 축구의 유상철은 “축구의 킥도 다리를 이용한 스윙이어서 골프 스윙과 원리가 비슷하다. 그러나 야구 선수는 어릴 때부터 방망이를 가지고 놀지 않는가. 야구 선수는 몸통 회전 같은 동작이 몸에 익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우는 “투수들이 공을 던질 때 채는 동작이 임팩트 때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또 승부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장타대회같은 긴장된 상황을 이기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배구의 신진식은 “배구는 빠르게 움직이는 공을 순간적으로 친다. 골프는 가만히 멈춘 공을 10초 정도 보고 있어야 하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나면서 제대로 스윙을 하기 어렵다. 배구 선수 중 장타자는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선호는 “스포츠 스타들이 골프 대결을 펼치는 게 참 재밌다. 야구 선수와 축구 선수가 야구나 축구로 겨룰 순 없지 않은가. 골프를 통해 우정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284m를 친 박찬호와 골프 초보 이천수는 “내년에 이 대회에 다시 참가할 수 있도록 실력을 갈고 닦겠다”고 말했다.

아산=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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