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17년간 옥살이 시켜놓고 반성도 안 하다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준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준희 내셔널부기자

김준희
내셔널부기자

“만세!” 지난달 28일 전주지법 2호 법정은 일순간 축제 분위기였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최대열(37)·임명선(37)·강인구(36)씨 등 지적 장애인 3명이 재심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침입해 잠을 자던 유모(당시 76세) 할머니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6년씩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재심을 맡은 전주지법 제1형사부는 사건 당시 최씨 등의 자백이 일관되지 않고 피해자의 진술과 어긋나는 등 유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장찬 부장판사는 “당시 법원에서 피고인들이 지적 장애 등으로 자기방어력이 부족한 약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자백 내용을 면밀히 살피지 못한 것은 아쉽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법원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사건을 잘못 처리한 것은 법원만이 아니었다. 99년 사건 당시 경찰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무시했다. 형이 확정된 직후인 99년 12월 부산지검은 이모(48)씨 등 진범 3명을 검거해 자백까지 받아내 전주지검에 알려줬지만 전주지검은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 검사는 당초 최씨 등을 재판에 넘긴 그 검사였다.

무죄가 확정된 임명선·강인구·최대열씨(왼쪽부터)와 박준영 변호사(맨 오른쪽). [사진 김준희 기자]

무죄가 확정된 임명선·강인구·최대열씨(왼쪽부터)와 박준영 변호사(맨 오른쪽). [사진 김준희 기자]

최씨 등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지난해 3월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며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해 지난 7월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재심 개시에 앞서 진범 이씨는 지난 1월 충남 부여군에 있는 피살자 유씨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가 사죄했다. 죄인으로 몰렸던 ‘삼례 3인조’에게도 직접 사과했다. 진실을 고백한 이씨의 행동이 재심 개시와 무죄 확정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재심 판결로 17년 만에 진실이 밝혀지자 경찰과 검찰에는 부실 수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전북경찰청은 지난 4일 “경찰 수사의 문제점 등을 면밀히 분석해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석 줄짜리 입장문을 냈다가 무성의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주지검은 같은 날 항소를 포기하면서 “오랜 기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피고인과 가족들에게 진심을 담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입장문을 내놨다. 하지만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 무엇보다 최씨 등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데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당시 경찰·검찰·법원 관계자들은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는 “조만간 국가와 직간접 책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준희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