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물간 차은택, 문화대통령 꿈꾸며 정권 초부터 정책 설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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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60·구속)씨의 최측근 차은택(47·CF 감독)씨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CJ그룹의 문화예술 사업 성과를 가로채려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청와대가 이재현(56) CJ그룹 회장의 누나 이미경(58)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배경에 차씨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복수의 CJ그룹 전·현직 관계자는 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차씨는 현 정부 초부터 문화예술 분야 국책사업을 설계했고 ‘문화계 황태자’가 아니라 ‘문화계 대통령’이 되길 꿈꿨다”며 “그러다 지난해 말부터 CJ그룹의 문화사업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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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5월 검찰은 CJ그룹의 1600억원대 배임·횡령사건 수사에 착수해 이재현(56)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그러자 이미경 부회장이 동생을 대신해 경영 일선에 나섰다. 하지만 같은 해 말 조원동(60)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개입했다. 조 전 수석은 이 회장 남매의 외삼촌인 손경식(77)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부회장의 퇴진이 시급하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이 과정에 문화예술계의 대모(代母)로 평가받던 이 부회장을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겼던 차씨가 관여했다고 CJ그룹 전 임원 A씨가 말했다.

복수의 CJ 전·현직 관계자 증언
“문화계 대모 이미경 부회장 내친 뒤
지난해 CJ사업 장악하며 실행 나서
CJ 사옥에 문화창조센터 세우기도”
“차씨 내일 새벽 중국서 귀국 예정”

차씨가 수면 위로 등장한 건 2014년 8월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위원으로 참여하면서다. 최순실씨가 예산 400억원 규모의 문화창조융합센터 계획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 부회장이 10월 쫓기듯 미국으로 떠나자 차씨는 CJ그룹의 문화사업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해부터 CJ그룹은 차씨가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2월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에서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이 열렸고, 이곳에 문화창조융합센터가 들어섰다. 경기도 고양관광문화단지(한류월드)에는 1조4000억원을 투자해 한류 테마파크 ‘K-컬처밸리’를 조성키로 했다.

차씨가 그룹 문화사업을 쥐락펴락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도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CJ그룹 관계자는 “차씨가 한때 유명 CF·뮤직비디오 감독이긴 했지만 최근엔 트렌드에 뒤처졌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내부에서 ‘한물간’ 뮤직비디오 감독이 갑자기 나타나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차씨는 CJ그룹 문화사업 강탈 외에도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기관 인사에 개입해 국책사업을 따내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4년 문화융성위원이 된 뒤 은사 김종덕(59) 홍익대 교수를 문체부 장관에, 외삼촌 김상률(56) 숙명여대 교수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앉혔다는 것이다. 광고계 선배인 송성각(58)씨는 문화콘텐츠진흥원장에 임명됐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은 차씨가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예산 760억원을 배정했고, 문체부도 1278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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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있다. 김성현(43)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은 광고업계에서 차씨와 연을 맺은 그래픽 디자이너다. 차씨는 자신의 광고회사 아프리카픽쳐스 등을 통해 정부광고와 KT·현대자동차 등 민간기업 광고를 부당하게 수주하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함께 포스코 계열 광고사인 포레카를 강탈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차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관계자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차씨가 9일 새벽쯤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며 “검찰 소환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는 차씨가 귀국하는 대로 신병을 확보해 제기된 의혹을 규명할 방침이다.

문희철·서준석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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