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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가수 이은미의 맨발이 준 27년 위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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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은미의 인터뷰 통보에 대뜸 ‘맨발’이 먼저 떠올랐다.

오래전 맨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그리하지 못했던 아쉬움 탓이었다.

처음 만나 사진을 찍은 게 4년 전이었다.

맨발인 그녀의 사진을 기대하며 만났었다.

당시 그녀는 ‘나는 가수다’ 시즌 2에 출연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 무대에서도 그녀는 맨발이었다.

게다가 그즈음 그녀는 책을 발간했었다.

제목이 ‘이은미, 맨발의 디바’였다.

아주 오래전 그녀의 공연을 본 적 있었다.

맨발로 무대를 휘저으며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눈으로 본 터였다.

그때 이미 ‘맨발의 이은미’ 사진을 상상했었다.

인터뷰 장소가 기획사 사무실이었다.

사진도 게서 찍어야 할 여건이었다.

어수선하고 협소했다.

인터뷰를 듣는 내내 공간의 제약을 피해 어떻게든 맨발의 사진을 찍을 궁리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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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 맨발로 사진을 찍는 게 어떠냐고 그녀에게 제안을 했다.

“맨발의 이은미는 무대에서 보여드릴게요. “라는 게 그녀의 답이었다.

미소 띤 얼굴에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더 이상 채근하지 못할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게다가 약속된 시간조차 빠듯했다.

아쉬워도 ‘맨발의 이은미’는 포기해야 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게 2주 전이었다.

이번엔 꼭 맨발인 채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취재기자가 오래전 봤던 공연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맨발의 디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속으로 무엇보다 바랬던 바였다.

 “노래할 때 구두 굽이 카펫을 누르는 소리까지 거슬리더라구요. 그래서 벗었죠.
그 바람에 ‘맨발의 디바’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세상에서 나보다 멋진 별명을 가진 가수가 있을까요? 스타일 리스트는 속상해 하죠. 패션의 완성인데 무대 위에서 벗어서 던져버리니…. 처음엔 이십 년 후에도 이렇게 불러 주시면 고맙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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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올해 데뷔 27년째이다.

여전히 ‘맨발의 디바’로 불린다.

요즘도 전국을 돌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맨발로 서는 무대 일 것이다.

오래지 않아 1000회 공연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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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자연스레 공연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대규모 안 따집니다. 지자체 문화예술회관에서도 공연합니다.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다 할려구요. 수익의 논리로 공연 생각하면 안되죠. 음향, 무대, 조명, 스텝 인건비, 대관료, 생각하면 답 안 나오죠. 함께하는 스텝의 희생이 있으니 가능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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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27년간 900회가 넘는 공연을 했으니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아직도 어렵다고 했다.

공연 전에 잠을 푹 자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베게도 가지고 다니지만 예민한 탓에 잠을 잘 못 이루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음악을 할거냐는 질문에 안 한다고 하는 이유도 잠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부담스럽고 큰 수익이 안 나는 데도 그녀가 계속 무대에 서는 이유는 뭘까?

그녀의 이야기 중에 답이 있었다.

“제가 무대에서 잘 웁니다. 팬들에게 너무 감사해서죠. 한 가수의 목소리를 삼십 년 가까이 들어준다는 게 너무 고맙습니다. 저도 많이 듣잖아요. 그러면 지겹게 들리는 부분도 있죠. 그걸 아니 고마움을 더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더 새로운 걸 하려고 애씁니다. 내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녀가 최근에 새 리메이크 앨범을 냈다.

앨범의 표지에 ‘Amor Fati’라 적혀 있었다.

라틴어로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이 앨범이 자신에 대한 위로로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이 받았던 그 위로가 그 어떤 이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위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메모장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이은미의 맨발이 준 27년의 위로’

인터뷰 후 사진촬영을 준비하며 적어둔 대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은미씨의 맨발은 우리에게 27년의 위로였습니다. 맨발의 사진을 꼭 찍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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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런 답 없이 빙긋이 웃기만 했다.

답을 기다리며 조마조마했다.

“맨발의 이은미는 무대에서 보여주겠다”던 4년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잠시 후 빙긋이 웃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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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며 그녀가 신발을 벗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제 발이 키에 비해서 워낙 작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발 정리라도 하고 올 걸 그랬어요.”

그녀의 말 그대로 작은 발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발로 27년간 우리에게 준 것은 분명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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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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