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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피해 평생간다|고문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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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생각이 지시하는 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 의지를 역행시키는 방법으로는 위협·고문등 물리적인 힘의 행사가 있다. 그러나 물리적인 의지역행이 지나가고 나면 그 대상자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생물적인 측면에서의 큰 피해를 본다. 가혹행위가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해 본다.
범죄수사에서 고문(가혹행위)에는 심한 구타를 비롯해 전기고문·물고문·잠 안재우기·국부고문·조명고문·굶기기·매달기·기압고문 행위나 소리듣기·정신신문등 그 형태는 수없이 많다.
이러한 가혹행위는 그 종류에 따라 많은 후유증을 남기는 것은 물론, 이것이 지나쳐 목숨까지 앗아가는 사례들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후유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두통을 비롯한 전신의 통증이며 피부손상, 골절이나 탈구, 청력·시력등 감각기능의 이상, 소화장애등 수없이 많다.
인체에는 통증을 느끼는 작은 세포와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큰 세포가 균형을 이룸으로써 보통때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데 구타등 심한 외부자극에 의해 그 균형이 일단 깨지게 되면 여러가지 형태의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욕조나 세수대야에 얼굴을 처박아 억지로 물을 먹이게 하는 물고문의 경우 물속에서 호흡을 하지 않을 수없고 그결과 공기가 드나드는 기도로 물이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공기와 폐포가 접촉하는 정상적인 가스교환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호흡장애를 일으켜 결국 사망에까지 이른다는 노영무교수(고려대의대)의 설명인데 이것은 익사때와 같은 과정이다.
이때 심장만 뛰고 있다면 재빨리 물을 빼고 인공소생법을 써서 생명을 건질 수도 있다.
또 입을 통해 강제로 많은 물을 마시게 되면 복부팽만(급성위확장)으로 횡격막이 눌려 역시 호흡장애가 올수 있으며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될 정도의 쇼크에 빠져 급격히 혈압이 낮아지면서 갑자기 쓰러지거나 의식을 잃기도 한다.
가혹행위로 인한 후유증은 육체적 고통 못지않게 정신적 측면에서의 폐해도 심각하다.
이른바 고문증후군으로 불리는 각종 스트레스성 질환이 이에 해당된다.
우선 전반적인 기억력과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특정한 업무나 연구에 몰두할 수 없음은 물론 자주 두통을 느끼게된다.
또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동반하는가하면 성기능장애나 불능현상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악몽이 계속되고 가치관의 혼돈과 삶에 대한 회의가 뒤따르는 수도 있다.
덴마크 의학회가 80년11월에 발표한 고문피해자들의 정신적피해 실태조사를 보면 대상자 1백35명중 74.8%인 1백1명이 한종류 이상의 정신의학적 이상증상을 호소했고 38.5%인 52명은 3가지이상의 정신질환증세를 보였는데 이들은 모두 뇌증후군을 앓고있는 것으로 판명돼 고문이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번 박종철군의 경우처럼 물고문으로 심문을 받은 피해자들 중에는 특이한 증세로 고생하는 사례도 있다.
즉 이들중 상당수는 욕실에 들어가는것 자체에 대한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목자체를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욕실의 타일과 뿌연 불빛·물냄새등이 자신이 고문받던 밀실을 연상시키고 고문당시의 악몽을 상기시켜 목욕탕에 접근하는것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갖가지 고문증후군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친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또는 평생동안 집요하게 괴롭힌다.
이대의대 이근후교수(신경정신과)는 『심한 경우 피해자로 하여금 극도의 피해망상과 공포증을 야기시켜 세상에 대한 혐오와 환멸을 느끼다가 급기야 인간파멸사태까지 이르는 수가 있다』고 가혹행위의 폐해를 지적했다.
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것이 말살 되는데서오는 정신적 피해증상이 훨씬 크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됐다. 아뭏든 도덕적인 면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의 인체를 이처럼 훼손시킬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관점에서도 가혹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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