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 『전원일기』 300회 특집 『곳간열쇠』|세대교체의 아픔, 아름다움으로 승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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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인생을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드라머 앞에서 시청자들은 겸허해진다. 언제나 바람 잘날 없는 삶을 따뜻한 시각에서 다독거려온 MBC-T V『전원일기』(극본 김정수, 연출 이관희)가 6일 밤 큰 고생을 했다.
시어머니(김혜자분)와 큰며느리(고두심분)사이에 집안살림 주도권의 상징인 곳간열쇠를 놓고 벌어진 갈등을 그린 3백회기념 특집극「곳간열쇠」편에서 김희장집안에 큰 분란이 벌어진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드라머는 가장 바람직한 「아름다운 화해」를 통해 「움켜쥔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싸우기만 하는 사람들」을 잔잔히 꾸짖으면서 이드라머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우쳐 주었다.
곳간얼쇠를 넘겨받지 않으면 분가해버리겠다는 큰며느리의 반란(?)과 그것만큼은「생의 마지막 도구」라며 양보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눈물 .최불암·김혜자내외가 꾸려왔던 『전원일기』의 살림에 7년째 정이든 시청자들에게 이들 노부부의 퇴진은 아쉽기 짝이 없는 것이었고 이에따라 김혜자가 곳간열쇠를 넘겨주면 안된다는 일방적인 응원(?)이 브라운관 안팎에서 일제히 퍼부어졌으나 『전원일기』는 과감하게「삶의이법」을 채택,「이제는 물러설때가 되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한세대가 다음세대를 위해 치러야하는 「거룩한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며 이에따른 아쉬움과 회한은 언젠가 『전원일기』가 겪어야만하는 숙명적인 제의와도 같은 것임을 제작진 모두가 숙연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곳간열쇠」는 이같이 안타까운 테마를 그러나 가장 슬기롭고 아름답게 풀어냈다.
가족회의 결과를 거부하고 가출한 김혜자의 눈물은 최불암의 애정의 손길로 씻기워 졌고 극 마지막 부분의 곳간에서 만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따스한 눈빛은 곧 『전원일기』와 시청자들간의 내밀한 신뢰의 눈빛으로 녹아 내리면서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아쉬움과 슬픔 또한 얼마나 풍요로운 삶의 토양이 되는가」하는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 것이다. 『전원일기』의 눈물에 갈채를 보내며 「삶의 질서」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아프게 되돌아본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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