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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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국 「빅토리아」여왕에게는 낭비벽이 심한 손자가 있었다. 그 왕손이 여왕에게 자기의 생일을 알리는 편지를 올리며, 생일 선물은 돈이면 더 좋겠다고 썼다.
다정한 여왕은 이 귀여운 손자에게 친필 회신을 보냈다. 『사치는 죄악이며 검소한 생활이야말로 가장 값진 삶이란다』 -.
얼마후 여왕은 손자의 편지 한통을 또 받았다. 『친애하는 할머니, 5파운드 잘 받았읍니다』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빅토리아」여왕의 친필은 현금이나 다름없었다.
그 「빅토리아」여왕 시절 영국에서 처음으로 근대 우편제도가 정착되었다. 거기에는 「롤런드· 힐」이라는 집념의 교육가가 있었다.
당시 우편제도가 가장 발달한 영국에서도 15마일 거리에 한통의 편지를 보내려면 4펜스가 들었고, 7백마일 거리엔 17펜스가 들었다. 우편요금이 거리와 편지 장수에 따라 매겨져 계산도 번거로울뿐 아니라, 요금도 수취인이 지불하는 후불제였다.
1832년 「힐」은 이같은 불편을 시정하는 획기적인 개혁안을 창안해냈다. 요금은 거리에 관계없이 무게로 정할것, 무게 반 온스당 1페니의 전국 균일요금으로 단일화할 것, 요금은 선불하는 대신 우표를 사용할 것등이 개혁안의 골자였다.
그러나 정부가 이 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우정 수인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힐」은 자신의 개혁안을 소책자로 펴내 계몽에 나섰고, 결국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여론의 뒷받침을 얻은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편요금의 원가계산 때문이다.
당시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의 우편요금은 편지 한통에 14펜스였다. 같은 거리에 드는 우편마차의 운행비는 약 5파운드, 한대의 우편마차에는 대략 4만3천통의 편지를 실을수 있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편지 한통의 송달 원가는 우편요금의 5백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폭리치고는 엄청난 폭리었다.
「힐」의 이 개혁안은 1840년 의회를 통과, 곧바로 시행되었으며 이어 여타 유럽국가와 미국에서도 이 제도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1875년 만국우편연합조약이 체결되어 국제우편 업무가 시작되자 세계는 우편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이 우편제도를 도입한 것은 1884년. 우정총국 개설 축하자리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나 삼일천하로 끝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 우정 1백년을 축하하며 체신행정의 현대화를 자랑하던 것이 엊그제다. 그런데 지난 10일 국제우체국에서 불이 나 해외 우편물 행낭을 1백60개나 태워버렸다.
더구나 이번 연말연시에는 3저호황으로 우편물이 l6%나 늘어나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수입도 무려 2백26억원이나 되었다.
우체국의 방화대책이 그렇게 허술한 것이 우선 놀랍다. 편지 한통 마음놓고 맡길수 없다면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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