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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두근두근 인터뷰] 기생충학자 서민 “양들이 왜 죽었죠? 침묵해서예요.”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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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등장한 이후로 "기생충 같은 놈"이라는 욕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됐습니다.

‘나쁜’ 기생충만 있는 게 아니라고, 인간 숙주와 공존을 모색할 줄 아는 ‘지혜로운’ 아이들도 많다고 기생충의 누명을 벗겨 준 분. 기생충학자 서민(49) 교수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별별 기생충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생충 콘서트』(을유문화사)를 최근 출간하고 안식년을 맞아 왕성한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TONG청소년기자들이 만났습니다.

서민 교수는 '못 생긴 얼굴'이 트레이드마크라는 오해를 사고 있지만 의외로 키가 크고 훤칠한 패셔니스타였어요. 아내가 주는 대로 입었을 뿐이라며 의외로 자기주도성이 떨어지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죠. 청소년기자들에겐 질문을 대본대로 하지 말고 ‘막 던지라’고 주문하기도 했어요. 서민 교수의 답변엔 진실과 농담, 반어법이 뒤섞여 있었어요. 그러니 인터뷰 보고 말꼬리 잡기 없기입니다~.

모양이 귀여워 어린이 장난감으로도 시판된 람블편모충. [사진제공=을유문화사]

모양이 귀여워 어린이 장난감으로도 시판된 람블편모충. [사진제공=을유문화사]

-기생충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동기에는 성장 과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셨잖아요. 나쁜 사람을 가리킬 때 ‘기생충 같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됐다면서….
“기생충보다 나쁜 게 천지인데 왜 기생충을 욕으로 삼죠? 그냥 나쁜 놈이라고 해야지, 동물에 비유해 비하하는 건 별로예요. 이렇게 기생충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어 교수님이 절 꾀었어요. 뒤를 이어 기생충을 연구할 지원자가 없다면서. 내가 마음을 바꿀까 밥도 사 주시고 친절히 대해 주셨는데 본격적으로 실험이나 논문이 시작되자 ‘조스’로 돌변했어요.(웃음) 손이 별로 정교하지 않아요. 뭘 해도 결과가 안 나와 괴로웠죠. 교수가 된 다음에는 손이 고운 사람을 뽑았어요. 나도 못하면서 ‘이렇게 해야 돼’라고 야단 치고.(웃음)”

-기생충이 징그럽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징그러운 적은 없어요. 오히려 힘들었던 건 털 달린 동물을 상대할 때예요. 털 달린 동물을 좋아해 개도 5마리나 키우거든요. 고양이 실험을 하면 ‘차라리 날 죽여라’ 싶고 쥐를 죽이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기생충을 연구하려면 털 달린 동물도 다뤄야 하는군요.
"그렇죠. 손이 고운 사람을 뽑기 전까지는 논문이 없어 고민이었어요. 학교에서 ‘자르겠다’ 경고장까지 날아왔죠. 문득 '철새를 연구해 보자' 생각이 났어요. 철새가 주로 먹는 해산물이 기생충 덩어리거든요. 전세계 기생충을 퍼뜨리는 주범이고요. 새 잡으려고 활 쏘는 연습도 했는데 문제는 철새를 잡으면 불법인 거예요. 그래서 포획 허가를 받은 새 연구자들을 통해 샘플을 구했어요. 논문을 쓸 때는 ‘found dead(죽은 채 발견)’라고 확실히 밝혔죠. 새 한 마리에 정말 기생충이 많았어요. 한 마리에 논문 하나씩 썼다니까요. 그 해에 상도 받았어요."

-오… 그렇게 빛을 보신 건가요.
"하지만 회의에 빠졌어요. 좋은 논문은 인용이 많아야 하는데 '조회수 3회' 이러면 다 나야. 그러다 제 2·3 저자로 많이 참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죠. 학자들 사이에선 논문 제 1저자를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신경전이 있잖아요. 1저자가 되면 점수가 많지만 2·3저자는 상대적으로 점수가 작거든요. 하지만 2·3저자로 여러 편을 내도 점수가 쌓여요. 1저자 하겠다고 싸워 팀이 깨지면 (2·3자를 계속 못하니) 상처뿐인 영광이죠. ‘비굴한’ 자세로 10년을 버텼어요. 일보후퇴, 이보전진인 거죠. 욕심을 버리고 멀리 내다 봐야 해요.”

-기생충에 대해 가장 왜곡된 사실은 어떤 건가요.
“요즘도 가끔 몸이 조금 안 좋다 싶으면 기생충 탓을 하는 분이 있어요. 어떤 애가 항문이 가렵다 그러면 기생충인가 하면서 구충제를 먹여요. 항문이 가려운 건 잘 안 씻어서예요. 자기 잘못이 아니라 기생충 탓을 하면서 뭔가 면죄부를 얻으려는 태도. 기생충은 억울합니다.”

-기생충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다르네요. 의사들은 보통 박멸하려고 하지 않나요?
“기생충 환자에게 기생충을 평생 갖고 사시라, 그런 건 아니고요. 이제 거의 박멸 단계니까 회 같은 건 걱정 말고 계속 드시라는 거예요. 사람에게서 발견할 기생충은 다 찾았어요. 물론 누군가가 지네를 먹었다면 지네를 먹은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첫 번째 발견 기생충이 되겠죠. 기생충은 저항성이 없어요. 40년 전 만든 약으로도 잘 죽어요.”

-의사자격증이 있는데 진료는 안 하나요?
“환자를 진료하면 수업을 많이 안 해도 돼 잠깐 고려했어요. 그런데 몇 명이나 오겠어요. 한 달에 4명 정도? 무료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전부 ‘기생충 망상증’ 환자예요. 이 분들과 1시간 넘게 얘기하다 보니 너무 소모적이라 5000원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감이 낮다고 해요. 경쟁에서 낙오될까 두려움이 많고 항상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해요.
“난 연구도 잘 못하고 외모 콤플렉스도 많았는데 그걸 극복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다른 분야에서 성취를 좀 하면 어느 정도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요. 물론 해결책은 아니죠. 책을 아무리 써도 본업이 연구잖아요. 논문을 못 쓰면 교수사회의 인정을 못 받아요. 근데 논문의 세계는 1등이 없어요. 스무 편이 서른 편의 1.5배 모자란 건 아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돼요. 우리 교육은 지금 같은 길로 몰아넣고 한 길로 가게 하잖아. 서울대가 종점이라 그러면 99명을 패자로 만드는 구조인데 이런 사회를 만든 게 우리 책임이라 미안하네요.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맞지 않는 일을 해서예요. 나도 학문을 아주 사랑하지 않는데 교수를 하고 있어요. 착하지 않은데 착한 척 얼마나 힘들까. 전부 가면을 쓰고 있어. 굳이 공부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좋잖아요. 기생충을 공부하지만 의대를 안 나온 친구들이 있어요. 연구도 잘하고 아이디어도 뛰어난데 단지 의사 자격증이 없어 교수가 못 됐어. 의대 나온 나는 박사 따고 서른둘에 바로 교수가 됐는데. 기생충학을 하고 싶은 고등학생에게 '의대를 나오세요' 하면 멘붕이죠. 우리나라에서 의대를 가려면 0.5%에 들어야 하잖아요.”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서울에 있는 대학 모조리 지방으로 내려 보내면 좋겠어요. 서울에서 알바하면서 그렇게 어렵게 살 필요 있나요? 지방 살아 보니 좋아요. (그림을 그리며) 작은창자 여기에 회충이 살고 있어요. 난 편충인데 여기 살고 요충은 여기 있어요. 회충이 욕심을 부려 음식을 다 먹으면 얘네가 굶는데 적당히 먹고 골고루 간단 말야. 내가 천안 청당동에 사는데 사람들이 청담동인 줄 알고 가끔 존경심을 표해. 서울 30억짜리 아파트 좋지도 않잖아요. 층간소음 있고. 서울 당산동 전세를 빼서 여기 54평 아파트를 샀어요. 다들 집하고 애한테 돈을 다 써요. 개는 교육비가 안 들어요. 영어를 가르칠 필요도 없고. 우리나라는 점점 사람 자식을 낳고 기를 만한 그런 곳이 아니게 돼 가는 것 같아요.

문제는 정치예요. 여러분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우린 어차피 얘네 집권하면 지네 맘대로 하고 얘네도 마찬가지인 구조예요.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제3세력이 있으면 서로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젊은 사람이 모여야 돼요. 고등학생, 대학생 모이면 300만 명이죠. 대선이 100만 표로 결정 나는데 300만 표면 대단하죠. 그래야 정치인들이 관심을 갖지. 20대, 30대 국회의원이 너무 적어요. 평균 연령이 58세. 젊은이들 밥그릇 스스로 챙겨야 해요. 프랑스 애들은 정년연장 한다 이러면 막 거리로 나와요. 자기들 일자리 줄어든다고. 양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요? 목소리를 안 내서예요. 개도 아쉬울 때 짖는데.

근데 여러분들 자체가 이미 아무 생각이 없어. 근원적으론 책을 읽지 않아서고. 스마트폰은 정말 보수 정치인들 음모 같아요. 애들이 모여서 얘길 안 해요. 혼자 있어. 혼자 있는 사람 상대하는 건 너무 쉽잖아요. 개미들 한 마리씩 오면 밟으면 되잖아. 떼로 오면 도망가잖아."

-공부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너무 없어요.
“학생은 어느 정도 공부를 하긴 해야 하는데 원하는 대학을 못 갔다 하더라도 계속 공부를 하면 언젠가 앞지를 수 있거든요. 당장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공부는 자기 것이 돼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죠. 우리나라가 제도적으로 역전이 가능한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자격증을 딴다든지 하면….”

-집안도, 외모도 안 돼 공부라도 해야지 마음먹는다고 공부가 바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무슨 비결이 있나요?
“이 얼굴로 공부까지 못하면 어쩌지 겁이 덜컥 나고 벼랑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은 길이 있지만 나는 절박하다, 다른 길 없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니 누가 방해해도 공부가 되더라고요. 조카는 시험 기간에 게임을 해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한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이상하게 내 공부를 계속 방해했어요. 그래도 이불 속으로 플래시를 켜고 변태적(?) 방법으로 했죠. 중2 때 반에서 20등 했거든요. 열심히 하니 9등까지 가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한 놈 한 놈 제치려니 어려웠어요. 시간이 없어 3등으로 졸업했어요. 방학 두 달 동안 미친 듯이 공부했고 결국 고등학교 때는 반 1등이 됐어요. 일요일엔 15시간 공부했죠. 화장실 갈 때도 스톱워치를 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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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가질 생각은 없나요?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은 진심이에요. 내가 외모 때문에 살아온 길을 생각하면 과연 자식이 나랑 같은 길을 견뎌내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모님이 미인이시라던데요?
"(애를 혼자 낳는 것도 아니고) 쉽지는 않죠. 다른 가족들 보니까 애 때문에 자기 삶을 저당 잡혀 살더라고요. 내 선택이 옳았구나. 개가 훨씬 좋아요. 기대를 안 하잖아요. 기대와 실망 사이의 간극이 갈등 유발 요인인데 개들은 있는 그대로 좋아하니까.”

-어떻게 글을 쓰면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청소년들도 자기소개서, 논술 등을 놓고 고민이 많은데요.
“블로그에 사진을 많이 넣잖아요. 사진으로 때우곤 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좋은 글은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거예요. 개 사진이 있으면 명백히 우리 개가 아니니까 동화되거나 감정이입이 되는 걸 방해해요. 내가 키우던 개랑 비슷해야 정이 들잖아요. 글만 가지고 승부하세요. 평소에 일기를 쓰면 도움 돼요.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수단이 글이에요. 글을 쓰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막 쓰게 돼요. 객관화가 되죠. 부부싸움을 글로 쓰다 보면 내 잘못도 있구나 생각이 나요.

글을 안 쓰다가 갑자기 자소서를 쓰면 어렵죠. ‘보이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 봐요. 우기지 말고요. ‘나는 키가 크다.’ ‘집에 들어갈 때 고개를 수그리는 게 불편하다.’ 어떤 게 나을까요? ‘먹는 걸 좋아한다’고 직접 표현하기보다는 ‘화가 나 삼겹살 3인분을 혼자 먹었다’ 이러면 그냥 알 수 있죠. ‘착하다’ 쓰지 말고 ‘200원 떨어진 거 안 줍고 그냥 갔다’ 이렇게요. 아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구나 싶죠. 일기 쓸 때 주위를 잘 관찰해야 해요. 스마트폰만 하면 친구도 안 보이고 얘기도 없어져요.”

사람 눈에 잘못 들어간 동양안충. 보통은 쉽게 꺼낼 수 없는 동물 눈을 좋아한다.

[사진제공=을유문화사]

사람 눈에 잘못 들어간 동양안충. 보통은 쉽게 꺼낼 수 없는 동물 눈을 좋아한다.

-교수님의 엽기의학탐정소설 『대통령과 기생충』을 읽었어요. ‘떨어진 꽃잎이 처절하게 나뒹굴고…’ 이런 문학적 표현도 나오던데요.
“그런 말을 썼어요? 왜 그런 겉멋 든 문장이 나오느냐 하면 알맹이가 없어서예요. 정말 아름다운 글은 짧아요. 느낌표 네 개 붙이는 사람 있잖아요. 남들도 느껴 줬으면 해서,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그러는 거죠. 좋은 글은 그것만으로도 사람들한테 울림이 오죠. (한숨 쉬며) 이거 쓸 때 저는 뜨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죠. 어떻게 하면 웃겨 볼까 사심이 가득했더라고.”

-11세 동생이 『기생충 콘서트』를 읽었어요. 생물학자가 꿈이라 사인을 받아 오라네요.
“『기생충 열전』 목표가 2쇄였어요. 두 달 만에 4쇄를 찍으면서 목표가 10쇄로 바뀌어요. 당시 아내가 저를 ‘10쇄야’라고 불렀죠. 이 책 뒤를 봐요. 아직도 1쇄네.(당황) 그럼 3000부를 찍었는데 아직 다 안 팔린 거지. 솔직히 판매에 큰 관심이 없어요. 출판사에서 서민 박사의 역작이라고 기대를 많이 했지. 허허. 열전 때는 ‘연가시’가 개봉돼 타이밍이 좋았죠.”

2012년 영화 ‘연가시’: 연가시는 곤충의 몸속에 기생하지만 짝짓기는 물속에서 하는지라 곤충을 물로 가게 만들어야 한다. 곤충에게 갈증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함으로써 물가로 유도한다. 영화에선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이 물로 뛰어들어 죽는다는 과장된 설정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2012년 영화 ‘연가시’: 연가시는 곤충의 몸속에 기생하지만 짝짓기는 물속에서 하는지라 곤충을 물로 가게 만들어야 한다. 곤충에게 갈증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함으로써 물가로 유도한다. 영화에선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이 물로 뛰어들어 죽는다는 과장된 설정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서민 교수가 TONG청소년기자가 가져 온 자신의 저서에 해 준 사인. 기생충 그림에 맞춤형 글까지 써 준다.

서민 교수가 TONG청소년기자가 가져 온 자신의 저서에 해 준 사인. 기생충 그림에 맞춤형 글까지 써 준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이도현(천안여고 1)·이하나(신서고 1) TONG청소년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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