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과 추억] 기하추상화 선구자 102세 한묵 화백 별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기사 이미지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한묵(사진) 화백이 1일 파리에서 별세했다. 102세.

프랑스서 50여 년 작품 활동

고인은 1956년 유영국·박고석 등과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해 한국적 기하추상화의 세계를 개척한 작가로 꼽힌다. 점·선·면, 빨강·파랑·노랑 3원색으로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함축하려했던 그는 말년에 “붓대 들고 있다 씩 웃고 간다”는 천생 화가의 변을 남겼다.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묵은 30년대 초 건너간 만주에서 그림 수업을 시작해 일본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뒤 55년 홍익대 교수로 부임했다. 61년 새로운 예술세계에 대한 갈증으로 교수직을 버린 뒤 파리에 건너가 50여 년을 우주 공간의 역동성과 울림을 표현하는 데 몰두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기하추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69년 아폴로 11호선의 달 착륙 사건을 들었다. TV 중계를 지켜보다 큰 충격을 받은 화가는 ‘2차 평면에 4차원 우주 질서를 담겠다는 야심’을 키우게 됐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에 살면서 그 우주 공간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 그는 소용돌이 모양이 역동적으로 뻗어나가는 원색 그림을 창조했다. 그 기하학의 세계는 무한한 우주 속에 던져진 인간의 전율이었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덕수궁분관에서 42년 만에 귀국전을 열었고, 2012년에는 도불(渡佛) 51주년 기념전을 갤러리 현대에서 개최했다. 평생 작업 100여 점을 수록한 생애 첫 화집을 발간하며 그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에 대한 도전”이라고 썼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