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헌법은 대통령 수사를 막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기사 이미지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대통령이 형사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수사 대상이 되는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84조의 형사소추 유예 조항은
임기 중 기소받지 않는다는 것
정치·법률적 해결 위해서라도
위법행위에 대한 조사 불가피

불가론자들은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84조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 조항의 초점은 형사상 소추를 금지한 뒷부분이 아니라 ‘재직 중’이라는 앞부분에 있다. 이 조항은 대통령에게 형사면책의 특권 또는 항구적인 형사불소추특권을 부여한 것이 아니다. 단지 퇴직 시까지만 소추, 즉 공소 제기를 유예한다는 의미에서 ‘소추 유예의 특전’을 규정한 것이다. 대통령의 범죄에 대한 ‘형사소추 유예제도’다. 그런데 소추 유예가 성립하려면 수사를 통해 소추 대상이 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소추 대상이 됨에도 퇴직 시까지 한시적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으로, 헌법 제84조를 수사의 개시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으로 볼 수는 없다.

또 헌법 제84조는 소추유예의 예외로서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란죄 또는 외환죄에 해당돼 재직 중이라도 소추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외의 범죄로서 소추를 유예해야 하는 경우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수사가 필요하다. 나아가 수사 결과 후자의 경우에 해당돼 당장은 소추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퇴직 후의 소추를 위한 증거 확보 차원에서 퇴직 전이라도 수사가 필요하다. 또한 재직 중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처해야 할 필요도 있다. 즉 증거확보 및 증거보전을 위한 수사는 재직 중이라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범죄 의혹을 받을 때 여야 합의로 특별검사제를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수사하기가 버거운 일반검찰의 한계 때문이다. 특별검사를 실시하는 데 합의하면서 반대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자기모순이다.

기사 이미지

헌법 제65조는 대통령이 직무 집행 중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면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탄핵요건(직무상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배)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도 수사가 필요하다. 탄핵은 정치적 사유로 하는 것이 아니고, 위법성이 확인돼야 하는 것이므로 수사를 통해 가려야 할 내용이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이 사소한 위법을 저지른 경우라면 모를까, 중대한 형사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나아가 정확한 정보를 기초로 한 국민의 반응과 여론 등에 따라 대통령이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고 형사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이 살인죄를 범한 의혹을 받는다면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을 것인데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수사를 통해 진실을 확인해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든지 반대일 경우 대통령이 사직해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 국가를 위한 길이다.

대통령에 대한 형사소추 유예제도는 제헌헌법 제67조에 처음 규정돼 현행 헌법 제84조로 이어지고 있다. 제헌헌법 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제헌헌법 해설서인 자신의 저서 『헌법해의』(1949, 명세당)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 이외의 죄를 범한 때에는 그의 형사상 책임이 면제된다는 의미는 아니고 다만 재직 중 소추를 받지 아니함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대통령이 임기 만료, 사직 또는 파면 등으로 인하여 퇴직하였을 때에는 재직 중 범한 죄에 관하여 소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때에는 재직 중이라도 소추를 받는 것이며 그 이외의 범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우선 그를 탄핵에 의하여 파면하고 그 후에 형사상의 소추를 할 수 있는 것이다’.(148~149쪽)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 헌법에는 이러한 형사소추 유예규정이 없다. 다만 의회나 법원의 증거 제출 요구를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는 이른바 ‘행정특권’이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미국 판례는 오로지 공익을 위해 행사하는 경우에만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 대통령이 증거테이프 제출 요구에 불응하면서 행정특권을 주장했을 때 미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이를 배척했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는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막연한 범죄 의혹만으로 바로 대통령에 대해 수사를 개시할 수는 없다. 주변부터 우선 수사해 대통령의 범죄 혐의에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 수사를 개시해야 한다. 둘째, 수사 범위는 퇴직 후 소추에 필요한 증거 보전을 위해 필요한 범위로 한정해야 한다. 셋째, 수사 방식은 대통령 직무 수행의 중요성,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 등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 따라서 강제수사, 특히 체포나 구속과 같은 수단은 곤란하고 임의수사 방식을 우선해야 한다. 아울러 직무 수행 및 위신에 큰 손상이 없도록 수사 시간·장소와 방법에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