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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어설픈 조선 구조조정, 미래는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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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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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석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

문득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소란스러운 가운데 조선산업 구조조정 방안이 발표됐다. 주요 골자는 조선업의 단기적인 ‘수주 절벽’에 대응해 2020년까지 11조원 규모의 공공 선박을 발주한다는 것이다. 또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도크 수 23%, 인력 32%를 감축하고 현재의 조선 3사 체제를 유지키로 했다.

선박·플랜트 수요 회복 힘든데
11조 퍼부어 3사 체제 유지키로
부실 원인, 업황 진단 허술하고
돌팔매 맞겠다는 각오도 없다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등의 많은 부작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운업에 대한 나름의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것을 보고 내심은 확실한 조선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면서 추진한 결과가 지난 6월 각사의 자구안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고,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과 함께 앞으로 우리 경제에 드리운 구름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조선업과 해운업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며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세계 최고인 선박 건조 능력을 기반으로 세계 1~3위를 휩쓸었다. 세계 10대 조선사 중 7개가 한국 회사일 때도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조선산업 부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조선업은 어느새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연간 8조원 이상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부실덩어리가 됐다.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부도 산업경쟁력 차원에서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부실한 산업의 지원 여부와 구조조정 방안은 우선 해당 부실의 원인과 향후의 전망을 얼마나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하느냐에 성공의 여부가 달려 있다.

우리 조선업은 선박 건조와 해양플랜트 건조를 양대 축으로 발전해 왔다. 부실의 원인도 선박 건조 분야와 해양플랜트 건조로 나누어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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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중국의 급격한 경제 개발에 따른 해운의 장기 호황과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설계와 건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조선시장의 최강자가 되었다. 그러나 2007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해운시장에 선복이 공급과잉 상태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해운업이 급격히 불황에 접어들었다. 해운업 경기의 반전은 선복 공급과잉을 얼마나 빨리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현재 전망은 어둡기 짝이 없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시점에 즈음해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시랜드는 앞으로 새로 배를 주문하지 않고 기존 중고선 중 1만TEU급 이상의 대형선을 저가로 구입하기로 했다. 또 다른 대형 선사인 CMA는 자사 선박 중 5000~6000TEU급 선박을 폐선하기로 결정했다. 해운시장에서 선복량이 넘쳐난다는 방증들이다. 이 때문에 짧은 기간 안에 해운업 경기가 살아나고 선박의 신규 발주가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과거 10년 단위로 신조선을 발주하고 중고선을 매각하던 대형 정기선사의 선박 활용 사이클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둘째, 심해저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장비인 해양플랜트는 원유의 수요 증가와 대체 에너지의 유무에 따라 그 수요가 좌우된다. 과거 해양플랜트가 조선업의 블루오션으로 인식된 것은 세계 경제의 유례없는 호황으로 원유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면서 심해저에서의 원유 생산도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됐다. 그런데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가 원유의 수요 감소를 가져왔고, 셰일가스라는 대체 에너지의 상용화 기술이 개발됐다. 당분간 해양플랜트의 수요는 사라졌다고 보는 전망까지 나온다.

셰일가스 매장량은 현재 발견된 것만으로도 전 세계가 60년 이상을 사용할 양으로 추정된다. 또 원유가 배럴당 60달러 이상이 되면 셰일가스가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를 의식해 유가가 60달러 이상으로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해양플랜트 수요가 조만간 회복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셋째, 조선업이 그간 우리 경제를 견인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수주물량 경쟁에 몰두해 국내 업체 간 저가 수주로 인한 폐해가 작지 않았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맥킨지 보고서는 판단 기준을 조선 3사의 재무구조에 한정한 듯한 한계를 보인다. 따라서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의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이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맥킨지 보고서의 지적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정부의 경제팀이 사명감은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기능은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감출 수 없다. 돌팔매를 맞더라도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체력을 비축했다가 다음 세대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라도 주겠다는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미래 세대의 먹거리는 준비하지 못하더라도 이 시대의 부채는 정리해 주는 것이 이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안타까움 속에 어수선한 하루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다.

정영석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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