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 가는 기업 살리자|사장이 자기 집까지 내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작년에 엔화시세가 급격히 뛰어오르면서 일본의 숱한 중소기업들이 도산했다. 일부 큰조선회사와 철강회사들은 놀고있는 공장을 폐쇄하거나 종업원을 감원하는 비상대책을 강구했다.
엔고의 역풍이 몰고온 불황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경영주와 노조간에 타협이 이루어지고 때로는 잦은 충돌도 벌어졌다. 그러나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만이 살거나 밤도둑처럼 줄행랑을 놓은 사장은 거의 없다. 공장문을 닫은 사장도 실직한 종업원들의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뛰거나 재건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바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1백80개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는 구루시마(내도)그룹의「쓰보우치」(평내수부·72)사장이다.
일본최대의 선박 건조능력을 가지고있는 구루시마그룹은 작년에 엔고로 수주가 크게 줄어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으며 급기야는 주거래은행이 뛰어들어 기업개편에 나섰다.
「쓰보우치」사장은 쓰러져가는 그의 기업군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내가 무일푼이 되어도 좋다』고 선언, 그가 가지고 있는 주식과 부동산, 하다못해 그가 살고있는 집까지 모두 팔아 2백80억엔(약1천5백40억원)을 재건자금으로 쓰도록 회사에 내놓아 간부 및 종업원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자산은 그의 고향 에히메 (애원) 현의 낡은 집 1채뿐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경영자의 책임을 다할뿐』이라고 밝힌「쓰보우치」사장은 공중 앞에 나서기조차 꺼려할 정도로 겸손하다.
그는『시코쿠(사국)의 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지역의 경제권을 휘어잡은 당당한 재벌이었다. 구루시마도크를 비롯한 조선회사가 21개사, 사세보 (좌세보) 중공업등 관련기업이 39개사, 호텔·신문·은행등 비조선분야가 1백20개사나 된다.
그에게 붙은 별명은 『재건의 귀신』.
78년 도산직전의 사세보중공업등 여러기업을 인수해 그의 독특한 경영수완으로 탄탄하게 키워왔다. 선박건조주문을 그룹이 일괄 수주해서 그룹각사에 배분, 사업체에 고루 돌아가도록 했다. 선주로부터 받은 최장 10년의 연불어음은 은행에 담보로 넣어 선박 건조비로 썼다.
그러나 엔고로 수주가 급격히 줄고 선주의 대금지불도 늦어져 주력기업인 조선관계사들이 작년 상반기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어음잔고 1천6백억엔 가운데 2백억엔은 받을 길이 없는 부실채권이 돼버렸다.
돈이 돌지않으니 조선소 문도 닫을수밖에 없었다.
「쓰보우치」사장은 자신이 일궈온 기업의 재건계획을 세우면서 주거래은행장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구루시마에는 우수한 기술과 인재들이 많다. 이것을 잃어버린다는것은 일본의 손실이다. 어떻게해서든 지원을 부탁한다』그는 자신의 진퇴문제도 주거래은행에 일임했다. 그가 회사재건을 위해 내놓은 사유재산에는 마쓰야마(송산) 시 고급주택지에 있는 자택과 싯가 50억엔의 주식·극장, 그리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부동산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구루시마그룹의 재건계획에 따르면 구루시마도크등 조선관계사를 가칭 내도흥산으로 새로 출범시키며 약3천억엔의 부채를 동결시키고 사장도 새로 선임한다는것.
「쓰보우치」사장은 경영의 실권을 모두 넘겨주고 회장으로 남으며 싼값으로 수왕한다든가 선박의 월부판매등 이른바「쓰보우치」식 확대일변도의 경영방법도 탈피, 축소경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66개사에 이르는 거래은행들이 구루시마 그룹의 새 회사들을 어떻게 지원해주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