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세사상을 시에 함축|송재소 작『다산시 연구』|정희성<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송재소씨와의 인연은 퍽 깊다. 70년대 초 내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해 갔을 때 그는 거기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첫인사를 나눌 때 나는 유난히 말쑥한 그의 용모에 신경을 쓰면서 「영어선생 해먹게 생겼군」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기묘한 일은 영어선생인 주제에 언제나 한문책을 끼고 다니는 것이었다.
국어선생 밥줄 끊어 놓으려고 그러느냐는 나의 농담에 그는 웃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나에게 책 한 권을 던져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다산이었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다산(정약용)이라면 나도 안다는 투로 시큰둥해 했지만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이름뿐이었다.
그 책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나에게 충격으로 남아있다. 특히 「전론」 은 평등주의를 꿈꾸는 그 무렵 나의 사고에 등불이 되어 주었다.『10년나마 됐지요?』
나는 그 시절을 생각하며 물었다. 그의 『다산시선』 과『다산시 연구』 가 나온 출판사의 망년회 자리에서였다.『다산 시를 연구하게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내가 다산의 시를 공부하기 시작한 76년께는 소위 유신의 말기적 증상들이 도처에서 드러나 사회 전체가 암울하고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던 때였지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자신에 대한 질책의 소리로 다산의 시가 읽혀집디다』
다산이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초가 봉건사회의 내적 모순이 격화하여 그 말기적 징후들이 도처에서 터져 나오던 시기였음을 기억했다.『그런 어려운 시대를 산 시인이니 만큼 고뇌도 깊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당연히 시에서도 주류를 이루었겠지요?』
『물론이지요. 그의 시는 대부분 사실적인 사회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상당수가 개인적으로도 불운했던 18년간에 걸친 유배생활 속에서 지어진 것들이라는 점은 의미 심장합니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유배지의 민중들과 접해오면서 특별히 발견한 것은 무엇입니까?』『민중의 실체겠지요. 봉건의 질곡 속에 몸부림치는 농민들의 모습을 가까이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가운데 경세가로서의 다산과 시인으로서의 다산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다산이 당시의 성리학자들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일까요?』
『자연 또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대결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관점일 터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을 미적 관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다산은 전자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다산이 본질적으로 사회개혁 의지를 불태우는 민중 지향적인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소이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