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건평 구속시킨 특수통…우병우 겨냥 “검찰 망가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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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됐습니다. 좋게 봐주십시오.” 새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최재경(54·사법연수원 17기) 전 인천지검장은 3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입을 뗐다. 이어 선뜻 내키지는 않았으나 제의를 거부하기 힘들었다는 뉘앙스가 담긴 말들을 했다. “나라를 위해 결심했느냐”는 질문에 “그리 거창하게 말하기는…”이라고 머뭇거리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최재경 민정수석 내정자는
최, 작년 검찰총장 후보 올랐지만
우병우의 민정수석실, 악의적 보고
김수남 검찰총장과는 막역한 사이
야당, BBK 수사 거론 “정치 검사”
검찰, 우병우 부인 14시간 조사

이날 우병우(49)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하며 청와대는 ‘최재경 카드’를 내밀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우 전 수석 경질론이 제기될 때마다 최 내정자가 후임자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최 신임 수석 내정 소식이 나온 뒤 한 검찰 간부는 “최순실씨 사건 수사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우 전 수석으로 인한 검찰 불신을 덜어내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그에게 손을 내민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 내정자는 특수통 검사들이 가장 신뢰하는 선배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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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내정자는 우 전 수석과는 원래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데, 지난해 말 검찰총장 인사 때 총장 추천위에 올라간 인사 검증 자료 때문에 관계가 나빠졌다고 한다. 당시 최 내정자와 관련해 악의적인 내용들이 포함됐고, 그게 민정수석실 자료였다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에 따르면 최 내정자는 최근 “한 사람 때문에 검찰이 너무 망가진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을 겨냥한 이야기였다.

반면 그는 김수남(57) 검찰총장과는 막역한 사이다.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할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두 사람은 동향(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3년 선후배 사이다. 2008년 김 총장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있을 때 최 내정자는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주요 수사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에 따라 최씨 의혹 사건 수사에서 검찰의 자율성이 확보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 안팎에서는 최 내정자 기용에 김기춘(77)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이명재(73) 청와대 민정특보가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 내정자는 이들과 오랜 친분이 있다. 최 내정자는 이 특보를 ‘인생의 멘토’라고 표현한다. 최병렬(78) 전 한나라당 대표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 전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원로그룹 ‘7인회’의 멤버다. 최 내정자는 그의 조카다.

최 내정자가 검찰 조직 안에서 신뢰를 얻어 온 것은 ‘정치 검사가 아니다’는 평가 때문이다. BBK 주가조작 사건, 노건평씨가 구속된 세종증권 매각 비리 사건(향후 ‘박연차 게이트’로 연결)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은 있지만 대다수 후배 검사들은 “원칙대로 처리했다”고 말하고 있다.

최 내정자는 4년 전 중수부장 시절에 한상대 검찰총장의 대검 중수부 폐지 추진에 반대하며 ‘항명’했다. 이후 승진에서 누락돼 인천지검장으로 보내졌고, 세월호 사건을 수사하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되자 검찰을 떠났다.

야당은 청와대의 민정수석 인사를 일제히 비판했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병우 수석보다 더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BBK 수사 책임자라는 경력과 대구·경북(TK) 출신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격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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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 전 수석의 부인 이모씨는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14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이씨는 경기도 화성의 땅을 차명으로 보유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가족 회사인 ‘정강’ 명의로 고급 차량을 등록해 사용하고 회삿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횡령 의혹도 받고 있다. 의경 보직 특혜 의혹을 사고 있는 우 전 수석의 아들은 여전히 검찰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최재경=▶경남 산청(54) ▶대구고·서울대 법대 ▶사시 27회(사법연수원 17기)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대검 수사기획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중수부장 ▶인천지검장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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