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택 방인근 미발표유고 대량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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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화수분』『소』 등 빼어난 단편을 남긴 기독교적 휴머니즘의 작가 늘봄 전영택 (1894∼1968)과 장편『마도의 향불』 『방랑의 가인』등 1930년대부터 해방전후까지 대중소설로 인기를 모았던 작가 방인근(1899∼1975)의 다량의 미 발표 유고가 동시에 발굴되어 문단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현재 발굴된 전영택의 원고는 수필 38편(77백41장)과 성경연구 6백장 등이며, 방인근의 원고는 소설 2편 (각각 24장, 72장) 과 희곡 1편(64장) 등이다.
이번 미발표 유고는 방인근의 대표 작품들을 재출간하기 위해 그의 장남인 방희천씨(65) 를 찾은 시인 유문동씨 (44·문예춘추사대표) 의 권유에 의해 유가족들이 고인의 원고를 정리하던중 발견했으며, 방희천씨를 통해 유씨와 알게된 전영택의 장남 전상범씨 (60·성대교수) 역시 같은 권유에 의해 부친의 유품 속에서 미발표 수필을 찾아 정리했다는 것이다.
전상범씨는 『8년전 작고하신 모친께서 유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원고가 발굴될 줄은 미처 몰랐다』며『앞으로 이번 원고까지 합쳐 전집을 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목사였던 전영택과 소문난 한량이었던 방인근은 잘 알려진대로 작품 경향과 생활방식등은 전혀 다르지만 처남·매부 사이. 장안의 미인(춘원의 표현)이자 동경유학까지 다녀온 전영택의 누이동생 전유덕이 방인근의 첫번째 부인이다.
전유덕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부친들 역시 고인이 되었지만 사촌간인 방·전씨는 아직까지 집안의 작은 일에도 친구처럼 의논하는 막역한 사이다.
전영택의 원고는 대부분 50년대 말에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67년까지 씌어졌으나 간혹 1920년 것도 섞여있다.『나의 세계』 『사람다운 사람』『명동거리의 그리스도』등 다양한 수필이 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춘원이 그립다』 『나의 유산』등이다.
22장짜리 수필 『춘원이 그립다』를 보면「얼굴이 희고 눈이 노란」이광수와의 많은 추억담을 되새기면서 북으로의 피랍을 안타까와하는 친구의 절실한 마음을 솔직히 담고 있다. 특히 해방후 친일이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춘원이 자책하는 모습을 비롯해 일본 유학시절 고국을 그리워하던 일, 그의 신혼시절 일화등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어 이광수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다.
한편 방인근의 유고중 주목할만한 것은 『대통령』이라는 24장짜리 원고.
장편의 시작 부분인데 작가는 머리말을 통해 『이 소설은 10년전쯤 모 신문에 연재하려고 했으나 당시 자유당 시절이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저촉될까봐 주위에서 반대해 할수 없이 애정소설을 또 쓰게 됐다』고 밝힌 뒤 『그러나 이 소설은 이미 전대통령이나 현재의 박대통령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쓸 것이며, 그것도 죽기 전에 최후의 역작으로 남기고 싶다』고 자신의 심정을 비장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혈압등 건강 악화 때문인지 그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최후의 결정판은 결국 완결시키지 못한다.
내용은 빈농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고학하며 어렵게 공부를 마치나 도회지에서 호화스런 직장에 머무르기를 거부한 채 농촌 부흥이란 이상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의 되돌아옴으로 해 그 마을의 빈농들은 점차 활기를 띠며 생동감이 넘치기 시작한다. 그의 별명은 대통령.
또 64장짜리 희곡 (겉장이 떨어져 작품 제목을 알수 없음)도 농촌에서 건강히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원고들을 읽어본 유문동씨는『1924년 춘원과 함께 문예지「조선문단」을 창간, 한국 문학의 개화에 주요역할을 담당했던 작가 방인근씨가 본격 문학을 포기하고 일시적인「원고료 맛」으로 통속소설을 썼던 것이 못내 한이라고 말년에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는 것이 실감난다』며 『이번에 발굴된 유고를 보면 그가 비록 건강 때문에 집필을 완료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본격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을 알수있다』 고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그의 노력을 안타까와했다. <양헌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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