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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 릴레이 기고 <11> 대륙으로 연결된 한반도를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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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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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

2016 평화 오디세이는 러시아의 동쪽 창인 극동 러시아를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는 귀중한 기회였다. 극동 러시아는 ‘러시아의 부(富)와 힘의 원천이며, 동시에 러시아가 안고 있는 모순과 곤란이 응축된 지역’이다. 또 러시아의 빛과 그림자, 희망과 불안, 그리고 지도자들의 야심과 위기감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은 철도로 러시아 연결 추진
러시아 본토와 홋카이도 연결하면
일본은 교통·물류 동북아 허브 돼
한국은 ‘섬’ 고립 탈피 노력해야

극동 러시아의 방문은 돌궐제국의 장수였던 빌게 톤유쿠크가 말하던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의미를 현장에서 절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오디세이 내내 스스로를 향해 끝없는 문답이 오갔다. ‘우리는 성을 쌓는 자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길을 만드는 자인가’라는 질문과 대답이었다.

극동 러시아 하늘길, 바닷길, 육지의 길은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우하게 된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보았던 거대한 야생마가 아니었고,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무적’의 러시아 극동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항 귀퉁이에 정박된 서너 척의 군함 수준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항, 자루비노항은 한국의 거점 항만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구멍가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필자는 오디세이 참가자들에게 황량하기 짝이 없는 자루비노항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왜 극동 러시아의 교통에 주목해야 하는 걸까. 러시아의 면적은 미국이나 중국의 두 배인 1710만㎢에 달하고 11개의 표준시간대를 갖고 있다. 동서 간 국경의 최대 직선거리는 9000㎞, 남북 간 최대 거리는 4000㎞에 달한다. 이런 대륙에서 교통은 단일 국가체제를 유지시키는 필수 조건이다. 러시아의 영토적 통일이 지역 간 연계, 세계 경제로의 통합, 국내시장 구축 및 천연자원의 합리적인 개발을 위한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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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골·러시아 땅을 흐르던 강들이 만나 하나로 합쳐진 아무르강. 아무르는 몽골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런 이유에서 최근 극동지역과 한반도 주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일본과 러시아의 새로운 밀월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오랜 숙원인 북방 4개 섬 반환 문제를 해결하면서 러시아에 그 대가로 새로운 협력사업을 제안했고, 러시아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5월 러·일 정상회담에서 10조원 규모의 경제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교통, 물류 인프라 정비 및 자원 개발, 주민생활 향상에 중점을 둔 사업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달 초 러시아의 반응이 나왔다. 러시아는 일본에 경제발전부 50개 사업, 극동개발부 18개 사업 등 총 68개 사업을 공식 제시했다. 경제발전부는 농산물 수출을 위한 물류시설, 수송 인프라 정비와 해저송전망 건설을 주요 의제로 제시했고, 극동개발부는 항만 개발, 공업단지 개발을 요청했다. 나의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극동개발부와 경제발전부가 러·일 철도 연결 사업을 공통 요구사업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사할린 간 타타르해협 7㎞와 사할린과 홋카이도 간 소야해협 42㎞를 교량이나 터널로 연결한다는 내용이다. 섬나라 일본이 대륙으로 철도를 연결하겠다는 거대한 구상이다.

이 철도가 건설되면 일본은 러시아의 지하자원 지대를 관통하는 바이칼 아무르 철도와 직결돼 석탄·광물·목재를 비롯한 전략자원을 가장 싸고 빠르게 반입할 수 있는 자원수송 회랑을 확보하게 된다. 일본의 인구 감소지역인 홋카이도는 오호츠크해의 새로운 산업·물류 거점으로 떠오르고 북극항로가 활성화될 경우 홋카이도는 동북아의 교통·물류 허브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부산항에서 함부르크항까지의 운송거리는 수에즈 운하보다 3200마일 단축되지만 홋카이도에선 4600마일 단축효과를 얻는다. 다가오는 12월, 아베의 고향 야마구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과 아베가 만면의 웃음으로 경협 합의문을 읽는 모습이 중개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타타르해협 터널은 이미 1950년대 스탈린의 지시로 사업이 추진된 바 있다. 당시 기술 부족으로 중단됐지만 공사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세계 최대 터널인 54㎞의 세이칸터널을 완성한 일본의 현재 기술력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반도는 경의선을 통해 러시아 대륙으로 연결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에 가로막혀 고립된 섬 처지가 됐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한반도의 지정학·지경학적 강점만을 노래하면서 스스로를 가두는 ‘성’을 쌓은 탓이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륙을 호령하던 선조의 기상이 스며 있는 땅에서, 러시아라는 친구와 새로운 길을 만들며 대륙으로 이동하는 기마민족의 잠재력이 깨어나길 간절히 기원해 봤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