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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요인 잇단 방한…무엇을 남겼나-여야의 자세와 엇갈린 시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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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달 초에 「에이브러모위츠」미 국무성 정보조사 담당차관보가 다녀간 것을 시발로 84년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자였던 「게리·하트」상원 의원, 「체시·잭슨」목사와 「화이트」전 엘살바도르 대사 등이 다녀갔고 「거스·아트린」미 하원 인권소위위원장 등 하원의원 13명과 「브레진스키」 전 미 대통령 안보담당 특보가 내한 할 예정이다.
이들의 대거 방한에 대해 정부·여당 측은 겨울 휴가철을 이용한 나들이 일뿐 국내 정치상황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를 애써 강조하고 있으나 야당 일각에선 현재의 정치상황개선에 어떤 변화를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마저 감추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이들이 정부의 고위관계인사는 물론 여야대표, 재야의 두 김씨를 두루 만났다는 점에서 방한결과를 미국에 돌아가 어떻게 활용하게 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정계 거물 방한 러시에 대해 민정당은 표면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들의 움직임과 파급효과를 주시하고 있다.
민정당은 우선 「하트」「잭슨」 등 84년 대통령 후보지명에 나섰던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방한 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 특정 이슈나 국내정치 상황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발전에 대한 미 행정부의 공식적인 인식과 공개적인 평가는 결코 변한게 없다고 민정당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하트」의원이나 「잭슨」목사의 방한은 내년부터 본격화 될 88년 미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이미지 관리의 일환』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의 발언과 행동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유사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당직자는 『미측 인사들이 정치적 휴식기를 이용해 여러 나라를 돌면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펼쳐 보이는데 우리가 과대평가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고 이춘구 사무총장은 『자신들의 국내선거용으로 떠드는 말에 국내 정치인들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내보인다』 고 못마당해 했다.
특히 「잭슨」목사의 「한국에서의 정치적 가혹 행위운운」 등의 발언에 대해 「잭슨」의 정치적 성향으로 보아 과도한 인권 관계발언도 아니며 한국에 대한 이례적인 관심을 표명한 것도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하트」의원이 국내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으며 한반도의 안보정세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주요사항은 면담 중 메모를 하는 등 진지한 모습이었다고 전언.
○…미측 인사들이 야권 3자를 만난 자리에서는 주로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얘기가 거론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민우 총재를 만난 「에이브러모위츠」차관보는 △신민당이 서울 대회를 연기한 배경 △국회 헌특에 참여할 것인지 여부 △선택 국민투표를 실시해 만약 의원내각제가 채택될 경우 신민당이 승복할 것인지 등 비교적 국내정치 상황에 대한 소상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질문.
그는 또 한국 내에서 반미감정이 일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달성을 미국 국민들은 바란다. 그러나 민주화를 달성하는데는 외길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고 대화와 타협의 방법을 강조.
김대중씨를 만난 「하트」의원은 대뜸 『한국 민주화를 위해 미국이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이 질문 지난봄 이 총재의 방미 중 「하트」의원이 이 총재에게 던졌던 것과 같은 질문. 「잭슨」목사는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만났을때 성탄절을 맞아 한국의 정치범을 석방할 수 있느냐고 촉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민당 인사들은 미국 인사들을 맞아 민감한 대응을 하면서도 자괴심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총재는 『그 사람들 우리의 안보문제와 인권문체에 관해 관심이 많으면서도 무역문제를 빼 놓지 않고 얘기하더군』이라고 설명하곤 『은연 중 자기나라 이익을 앞세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
특히 이들의 방한을 맞아 일부 야당의원들이 쟁탈전이나 하듯 달려들어 사진 찍기에 아우성을 쳤던 일 등은 깊이 반성해야할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11일 하오 「하트」의원이 신민당 사를 들렸을 때 일어난 해프닝은 야당의원 스스로도 분개했을 정도.
「하트」의원이 신민당 사에 들렸을 때 이 총재·이기택 부총재 외에도 10여명의 의원과 정장차림의 당원들로 붐벼 다소 들떠 있기까지 한 분위기였다.
의원들이 많아 사무처 직원들은 총재실에 추가 자리를 만드는 등 부산을 떨었는데 일부의원들은 카메라를 든 자신의 보좌관을 총재실 안에 대기시키기까지 했다. 「하트」의원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당직자들은 우르르 몰려 플래시를 터뜨리며 일방적인 악수 공세를 폈다.
「하트」의원이 다소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총재실로 들어서자 이들은 한꺼번에 뒤따라 들어가려다 만류하는 총재 측근들과 『체면 좀 지켜라』『왜 막느냐』는 몸싸움을 벌이는 등 해프닝을 연출.
한 보좌관은 카메라를 들고 잽싸게 들어갔다가 총재 측근들에 의해 강제로 떼밀려 나오기도 했다.
소동이 가라앉고 이 총재가 몇몇 간부의원만 소개하고 대화를 시작하려 하자 뒷자리의 일부의원들은 『나도 사진 좀 찍자』고 튀어 나왔고 이들의 몸에 밀린 「하트」의원은 엉거주춤 일어서야 했다.
20여분간의 대화가 끝난 후 또다시 사진 찍기 경쟁이 벌어졌는데 한 의원은 엘리베이터에 까지 좇아가 「하트」의원 옆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접근했고 그의 보좌관은 때를 놓치지 않고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런 사태를 지켜본 한 당직자는 『저렇게 찍은 사진이 다음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선보일 것 아니냐』면서 『도무지 창피한 노릇』이라고 분개.
○…이처럼 방한 미 요인들을 대하는 여야의 자세가 다르고 그들의 방한 목적에 대한 해석도 엇갈리지만 한가지 명백한 것은 미국무성이나 미국측 인사들의 대한 발언이 잦은 것은 우리 경험상 국내정치 상황이 「덜 좋을 때」나타나는 현상이란 점이다.
국내상황이 유동적이고 불안이 클 때 미측의 관심이 유달리 자주 나오고 미국인사들의 방한도 잦았던 것은 10·26 때나 유신때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때도 야당측은 미국의 관심 표명을 유리하게 해석하려 했고 여당 측은 평가 절하하려 했던 것이다.
최근의 미측 인사 방한 러시를 반드시 과거경험과 결부시킬 수 있는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국내정치문제가 미국 요인 앞에서 여야간에 경쟁적으로 제기되는 현상은 역시 유쾌한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허남종· 박석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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