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또 안 바뀝니까…"허남진 정치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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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을 취재하는 것이 요즘처럼 어려울 수가 없다. 서울대회를 연기했다고 기사를 쓴게 어저께인데 하루 지나고 보면 서울대회재개가 된다. 다시 부리나케 「서울대회 재개」라고 송고하고 보면 한나절만에 다시 「서울대회 연기」가 된다. 『이번엔 안 바뀝니까?』 『아, 우리가 바뀐다기 보다는 정세가 자꾸 바뀌니 그렇지요.』 이렇게 대답하는 신민당 간부들의 표정도 겸연쩍고 쑥스러워 하는 게 사실이다. 서울대회 뿐만이 아니다.
지난주엔 국회를 해산하고 13대 총선을 조기실시하자는 공개질문형식의 발표가 나오더니 『없었던 일로 해달라』는 해프닝이 있었고, 영수회담을 요청하는 공한 발송을 당론으로 정했다가는 두 김씨의 『때가 아니다』는 제동에 쑥 들어갔다.
신민당이 어디로 가고 있고 왜 이러는 걸까.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신민당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분석해 보면 강경·선명 콤플렉스에 걸려있는 오랜 야당의 생리와 계파정치의 부정적 속성이 복합작용 된데서 기인한 것으로 읽혀진다.
현실적으로 많은 벽이 가로놓여져 있는데도 회의만 열면 초강경의 목소리만 살아남는 속성. 신민당 인사들은 공개석상·공식회의에서는 강경하고 비공식 접촉·사석에서는 온건하다는 것이 늘 여당 측의 주장이었다.
다시 말해 야당인사들이 본심과 다른 발언, 다른 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서울대회 무산과 예산파동이란 외압에 앞뒤 생각 없이 장외투쟁 일변도라는 강경 카드를 뽑았던 것이며, 막상 이를 추진하려다보니 이런 저런 현실적인 어려움들과 만나게 됐지만 명분론에 밀려 하지 못하겠다는 소리를 못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정치에 명분이 있어야 하고 정치인이 명분을 중시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요청이다.
그러나 신민당의 당론이 그 구성원들의 의견·진심, 또는 본심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앞서했던 말이나 결정에 묶여 구성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쪽으로 나올 경우 그것은 결과적으로 당론의 내실 있는 추진을 불가능케 함으로써 당의 위신실추만 크게 할 우려가 있다.
이번 서울대회로 당론이 춤을 춘 일을 계기로 신민당은 늘 소속의원들의 광범한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당론결집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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