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나무 100그루 베고 불도 피워…경찰 불법행위 수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기사 이미지

지난 24일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 소속 공익근무요원이 무단으로 벌목된 나무와 나뭇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4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 국립공원 내 선비바위 앞. 느티나무와 굴참나무 등 나무 수십그루가 밑동이 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잘려나간 나무로는 불을 피운 흔적까지 남아 쑥대밭을 방불케 했다.

국립공원 내 사유지 선비바위 일대
산악인에 클라이밍 명소로 입소문
소유주, 취미생활 입산 허용했으나
추가 훼손 막기위해 현장 출입 통제

무단 벌목현장 주변에서는 두꺼운 합판과 철사를 이용해 만든 간이 화장실도 발견됐다. 탐방로가 아닌 사유지여서 출입이 통제된 곳인데도 누군가 자주 들어온 모습이었다.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 최진희(42·여) 주임은 “선비바위 주변은 클라이밍(climbing·암벽등반)이나 볼더링(bouldering·기구 없이 하는 바위타기)을 하는 사람들에게나 알려진 곳이어서 인적이 드물다”고 말했다.

국립공원인 무등산에서 나무 수십그루가 불법으로 훼손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013년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처음 발생한 대규모 벌목 사건이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25일 “무등산 내 사유지에서 벌어진 불법 벌목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무등산공원사무소와 광주광역시 북구는 앞서 지난 8월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했다.

무단 벌목장소 주변인 선비바위는 30m 이상의 바위들이 150m에 걸쳐 세워져 있다. 일대는 사유지이지만 암벽등반을 하는 산악인들에게는 새인봉, 용추계곡 벌집바위와 함께 무등산의 3대 암벽등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선비바위 아래 쪽에 있는 작은 바위들은 볼더링을 하는 산악인들에게 인기다.

무등산공원사무소 측은 지난해 11월 처음 선비바위 주변 나무가 벌목된 사실을 파악했다. 지난 22일부터 이틀간 치러진 볼더링 행사를 앞두고 관련 산악 단체의 행사 허가 요청을 받은 뒤 현장 점검을 나가서다.

무등산공원사무소 측이 북구와 합동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66그루의 나무가 훼손됐다. 굴참나무 18그루, 느티나무 17그루 등이다. 훼손된 나무의 지름은 작게는 6㎝부터 크게는 34㎝까지 다양하다. 이보다 작은 나무를 포함하면 100그루 가까이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유주 측은 추가적인 수목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장에 출입통제 테이프를 둘렀다. 주변에는 자수를 권유하고 스스로 손해배상을 하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내걸었지만 아직까지 범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소유주 측은 산악인들의 취미 생활을 위해 이달부터 내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 선비바위 일대 출입을 허락했지만 추후로는 불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찰은 무등산공원사무소 관계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무단 벌목이 지난해 가을 무렵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현장에 중장비가 진입할 수 없는 점과 나무 밑동에 남은 흔적 등을 조사한 결과 전기톱을 이용해 산림을 훼손한 것으로 파악했다.

무등산공원사무소와 경찰은 클라이밍을 하는 산악인이 범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선비바위 주변을 찾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거는 물론 단서조차 없어서 2개월 가까이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무등산공원사무소 관계자는 “암벽등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나무를 잘라낸 것으로 생각되지만 클라이밍을 하는 산악인들은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선비바위 일대 출입이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