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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사별 아래 이혼, 그 아래 비혼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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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지
서영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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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지
사회1부 기자

부끄러운 고백거리가 있다. 10여 년 전 여행지에서 비슷한 나이의 여성과 마주쳤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학생이냐고 질문하자 그는 “전 아기 엄마예요”라고 답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본지 저출산 기획 시리즈 ‘인구 5000만 지키자’ 취재를 위해 비혼모를 만나고 나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협했는지 반성했다. 인터뷰에 응한 박혜진(35)씨는 “사랑해서 결혼할 생각으로 만나다 아이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미진(46)씨는 “비혼모 되려고 작정한 사람은 없지 않으냐”고 했다. 이들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그저 용기를 낸 엄마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매년 8000~1만 명의 아기가 혼인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다. 앞으론 점점 더 많은 가정이 혼인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가족 형태에서 벗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그런데도 한국은 아직 비혼모에게 잔인한 잣대를 들이댄다. 주홍글씨처럼 ‘아빠 없는 아이’란 꼬리표를 붙인다. 심지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미혼모’를 검색하면 “미혼모 문제는 성과 관련된 중요한 사회문제의 하나. 미혼모 자신의 심리적·정신적 피해는 물론 태어난 아기의 양육도 문제가 된다”는 부정적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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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비혼모도 같은 한부모가족인데도 “사별 아래 이혼, 이혼 아래 비혼모로 등급이 나뉜다”고 당사자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정부는 비혼모를 한부모가족 정책 안에 포함시키면서도 이들을 분리해 지원하지는 않는다. 비혼모가 몇 명인지도 지난해 처음 조사됐다. 말로만 저출산 탈출을 외치면서 정작 출산의 일부를 차지하는 비혼모는 방치하다시피 한 것이다. 김희주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비혼모를 다양한 가족의 한 유형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펴야 일반인의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혼모와 비슷한 꼬리표가 붙었던 다문화가족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정부가 2006년 ‘여성 결혼이민자가족의 사회통합지원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다문화가족 사업을 시작한 이후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를 보고 우리는 비혼모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결혼 전 배가 불러가면 ‘혼수’라며 기뻐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결혼까지 무사히 골인하면 그 아이는 축복으로 남고 중간에 어그러지면 불행으로 치부되는 사회는 암울하다. 서류상 아빠가, 남편이 없다는 이유로 그 아이가, 그 엄마가 차별받는 사회는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서영지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