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중증외상센터에 미친 이국종의 좌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기사 이미지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그를 만난 건 5년 전 금요일 저녁이었다. 중환자실을 돌며 일일이 환자를 설명했다. 정비 중 차에 깔리거나 철공소 작업 중 너트가 배를 관통한 환자, 출산을 돕다 소한테 차여 장이 파열된 농부…. 그는 “외상 환자는 건설 일용직 등 사회적 약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국종이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의사다. 피가 철철 나는 중환자와 24시간 함께하는, 중증외상센터에 미친 의사다. 그 덕분에 9개의 권역외상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제 의사들이 잘하는 일만 남았다”던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지난달 말 두 살배기 김군이 견인차에 깔려 수술할 데를 못 찾아 12시간 만에 숨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국종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만 빨리 움직였더라면….” 수술할 데를 찾아 헤매다 약 7시간 만에 아주대병원이 받았다. 이번에는 정경원 교수가 나섰다. 2011년 이국종을 방문했을 때 진료에 열중이던 외과전문의다. 생활터전인 부산을 떠나 이 교수 밑에 와 있었다. 당시 그에게 “왜 힘든 일을 하느냐”고 했더니 “사람 살리는 게 좋아서”라고 답했다. 정 교수는 지난달 30일 김군을 받기로 하고 전문의와 간호사를 다 불러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수술 중이어서 안 된다니, 어떡하든 생명을 살려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기사 이미지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로는 외상환자 골든타임(1시간)을 지키기 힘들다고 보고 2720억원을 들여 딴살림을 차린 게 권역외상센터다. 그런데 샛길로 가고 있다. 어떤 데는 올 1~5월 전담의사 4명이 일반 환자를 더 많이 봤다(최도자 의원 국감자료). 외상환자만 진료하라고 의사당 연 1억200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당직을 빼먹거나 전문의를 다 채용하지 않은 데도 있다.

정부는 20일 전북대병원 권역응급센터, 전남대병원 권역외상센터를 취소했다. 그러나 1시간가량 헬기 출동이 늦은 중앙119구조대, 운항을 거부한 전북소방본부와 경기소방재난안전본부는 손대지 않았다.

이국종은 23일 자정 무렵 병원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외상센터가 안 될 것 같아요. 무지개를 좇았나 봐요.” 더 말을 잇기 싫은 듯했다. 그래도 외상센터가 이만큼 굴러온 것은 이국종에게 힘입은 바가 적지 않다. 이제 감사원이 나설 차례다. 중증환자, 특히 중증외상환자 응급의료 체계를 현미경처럼 훑어야 한다. 문제를 낱낱이 드러내 털고 가야 한다. 그리고 나서 진료 수가를 충분히 보장해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게 해야 한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