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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정부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보수적인 우파 정부의 고등교육 개혁안에 반대하여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던 프랑스 학생들이 단 이틀만에 학원으로 되돌아갔다. 파리에서 20만명, 지방에서 10만명, 그리고 좌파의 전국교육연맹(교원노조)등이 합세하여 거리를 휩쓸던 수많은 학생들에 대비해 수만의 경찰병력이 동원됐었다.
거리마다 교통이 차단된 파리는 48시간 동안 68년 5월의 학원폭동을 또다시 겪게되지 않나 하는 우려 속에 긴장감이 팽팽했으나, 정부가 개혁안을 재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이렇다할 충돌 없이 시가행진 정도로 정부에 대한 정책반대 시위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프랑스 정부가 내세웠던 「전체 학생들을 위한 교육개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경찰병력으로 시위집단을 침묵시킬 수도 있었을 테고, 의회에서 관계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프랑스 정부는 시위군중의 요구에 굴복하는 쪽으로 물러섰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는 『참으로 나약한 정부』라는 느낌도 없지 않겠으나 정치·정책논쟁이 반드시 「힘」만 가지고 풀어 나가는 것은 아님을 이번 사태는 보여주었다.
학생시위가 잠잠해진 뒤 「시라크」수상은 일요일인 30일 저녁 전국 TV방송에 나와 1시간 남짓 학생들을 설득하고 정부의·입장을 밝히는 대담프로에 참석했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대중과의 직접적인 힘의 대결을 피하고, 그러면서도 정부의 기본정책을 펴나가려는 노력은 서구 민주정치의 상식적 일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월 파리 시를 벌집처럼 들쑤셔 놓았던 잇단 테러사건 때도 프랑스 정부는 테러범 색출·검거 명분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기보다는 그 근본원인을 다스리는 외교적인 해결에 주력하여 결실을 보았다.
파리 시민들이 불편을 겪으면서도 「시라크」수상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홍성호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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