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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민족운동 연구 한단계 높일 때 사실발굴보다 해석이 중요-강만길 교수 「역사기행」 특강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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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제하 민족운동의 연구는 한단계 높일 때가 왔다』
강만길 교수(고려대· 한국사)는 제13회 한길역사기행 특강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충남예산군 수덕사 앞 제일여관의 지난 15일 밤8시. 10평 남짓한 방안에 40여명의 역사기행자들이 빽빽이 들어찬 가운데 진행된 이날 강의(일제시대 민족독립운동의 노선과 전개) 에서 강교수는 『일제하 민족운동의 연구는 이제 사실발굴의 단계에서 사실의 해석과 의미추구의 단계로 높여야 할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제하 민족운동이 단순한 민족운동 자체에 대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운동전체의 흐름과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구명하는 사실의 이론화 작업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교수는 이런 작업의 현실적 장애요인의 하나로 일제하 민족운동에서 좌익운동을 배제함으로써 전체운동의 절반밖에 연구되지 않는 점을 들었다.
윤봉길· 김좌진· 한룡운· 심훈등 민족운동가들의 생가와 유적지를 찾아 예산·홍성·서산·당진 일대를 답사한 이번 역사기행의 강의에서 강교수는 일제하 민족운동의 단계를 ▲충군주의적 운동과정을 넘어 서려는 단계 (한일합방당시) ▲부르조아적 공화주의 수립단계 (3· 1운동) ▲우익과 좌익의 병존단계(신간회·민족유일당 운동) ▲국내 좌익운동과 국외연합전선 지향단계 (31년 이후)로 나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 독립운동의 방법도 큰 변화를 보였다고 말했다. 『우선 1919년 3·1운동후 국내외에서 임시정부를 세우는데 총력을 기울인 시기가 있었으나 23년 상해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총본부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자 운동의 구심체로서 정부가 아닌 단일정당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26년) 그것이 좌우합작이며 단일정당으로서의 민족유일당 운동』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일제의 집요한 분열 책동으로 정강정책도 내놓지 못한채 실패했으며 35년 이후 다정당 단계로 이어졌다. 따라서 많은 정당들이 나타나 정강 정책을 내놓았으며 독립운동이 정치운동의 시각에서 발전된 면도 보여주었으나 독립운동으로선 난점이 많아 이후 정당간 연합전선 형성단계로 이행됐다는 강교수의 주장이다.
강교수는 또 독립운동 노선도 ▲독립전쟁노선(이동휘등) ▲외교독립노선 (이승만등) ▲실력양성론 (안창호등) 등 다양했으나 결국 독립전쟁노선(무장항쟁론) 이 가장 올바른 노선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을 끝까지 해낸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전쟁론으로 귀착됐으며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길은 무장항쟁밖에 없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결론적으로 『일제하 민족운동의 연구는 독립운동 35년의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민족이 추구한 민족주의의 방향이 과연 무엇이었으며 해방후 통일민족국가수립의 길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작업이 돼야 할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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