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치박물관|“전통의맛”을 배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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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늘을 사는 여성, 그들의 관심과 발길은 어디로 몰리는가. 무엇이, 왜 그들의 삶에 윤기와 활럭을 더하는가. 보다 적극적인 생활의 주인공으로 자리잡고 있는 요즘 여성들, 특히 주부들이 모여드는 곳에는 어떤 목소리와 표정들이 어우러지고 있는가. 그 첫 현장으로 최근 개관한 김치박물관의 김치강좌를 찾아보았다.
『어쩌다 김치맛이 괜찮구나 싶으면 상을 차려내기가 떳떳하고 참 좋은데 좀처럼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김치종류가 백가지도 넘는다던데 제가 아는거라곤 열가지도 못돼서요…』
김치담그는법을 배우러오는 주부들의 겸연쩍은 이야기를 듣고보면 주부경력 10년이니, 20년이니 해봤자「김치담그는거야 기본」이랄 만큼 자신만만해지지 않는 경우가 얼마든지 흔하다는것을 짐작케 된다. 또 주부의「손맛」이 쏙빠진 공장김치를 주문해버리거나 출장나온 김장조리사의 솜씨에 잔소리만 더 얹어서 김치독을 채우는게 소위「요즘 여성」의 전형은 결코 아닌 듯.
서울중구필동3가((277)0791)김치박물관의 수요김치강좌수강생은 예비신부 내지 갓결혼한 새댁이리라는 기대와 달리 2O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고 특히 30∼40대 주부가 많다. 30여명의「김치학생」중에는 중년남성들도 5명쯤 섞여있어 눈길.
또 너댓살쯤 됨직한 자녀들을 데리고와서 자신들이「김치공부」를 하는동안 자녀는 김치박물관을 돌아보며「김치문화」를 은연중 익히게 하는 주부들은『자녀를 돌봐줄 사람도 마땅치않거니와 어려서부터 김치에 호감을 느끼게하고싶다』는 얘기다.
전라도식 고들빼기 김치와 파김치 담그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윤미할머니(68)가『살짝 절인 파와 고춧가루, 그리고 멸치액젓이랑 생강다진것과 실고추를 조금씩 넣고…』하며 대충 손짐작으로 양념을 섞자 수강생들은 재료의 정확한 분량을 알려달라고 요구. 어림짐작에만 익숙해있는「김치선생님」은 『일일이 저울로 달지않아도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데…』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30대주부가 손을 들고 일어서더니『재료비를 좀내서 저희들도 직접 김치를 담가봤으면 좋겠어요. 공짜보다는 약간 돈을 내는게 더 떳떳하고 또 직접 담가봐야 재료를 얼마만큼씩 넣으면 되는지 나름대로 적어둘수도 있거든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각자 실습한 김치를 집에 가져가 식구들에게 맛 보일수 있으면 좋겠다며 맞장구. 그바람에 무료로 예정됐던 수요김치강좌는 가급적 재료비를 내고 수강생들도 직접 김치를 담가보는 실습형식을 취하기로 변경됐다.
강좌가 끝난뒤 가지김치·고추김치·깻잎김치등 10여종류의 색다른 김치들이 차려진 시식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모두들「매력적인 김치」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강좌가 시작되기전에 이훈석관장이「몇해째 캠프를 열어보니까 김치를 안먹겠다는 아이들이 해마다 10%가량씩, 늘더라」던데 우리 애들도 그래요. 새큼달큼한 토마토케첩이나 마요네즈·소스를 곁들인 야채샐러드만 찾고 김치에는 좀처럼 손도 안대거든요. 아이들이 반할만한 김치종류가 없을지…』
『고향생각, 어머니생각은 곧 김치맛으로 이어지는게 아닐까요? 이러다간 고향생각이니 어머니, 아내생각을 되살릴만한 맛도 사라질텐데… 아뭏든 사먹는거나 집에서 먹는 음식이 그게그거라면 아무래도 곤란할것 같아요』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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