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경-급진엔 다각적 대응을|금창태<편집국장 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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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시안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나타난 서울대의 용공대자보사건과 잇달아 벌어진 국화의 이른바 국시파동은 잔치기분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국민들의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이었다.
들뜬 잔치분위기에서 깨어나 제정신이 번쩍 들게 한 것까지는 좋았다고 할지 모르나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정치마당의 농 무와 학원·재야·사회전반에 감도는 긴장감은 백과결실의 청량한 가을을 엄동 혹한의 겨울로 느끼게 조차하는 요즘이다.
어쩌다 대낮 국립대학 캠퍼스에 북괴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대자보가 나붙고 『가자 배의 낙원으로』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유인물까지 나도는 형국이 되고 말았는가.
되돌아보면 학생운동의 좌경·급진 화 양상이 사회문제로 인식된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같은 경향을 막는다고 얼마나 많은 강·온 대책이 거론되고, 발표되고 실시되었는가. 강경과 유화사이를 널 뛰 듯하며 그 숱하게 나온 대책과 조처는 어떻게 되었길 래 이제 와서 『좌경용공세력이 잡초처럼 우거졌다』고 또다시 걱정을 해야 하는가.
「대책」과 「조치」가 발표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잘 돼 가는 걸로만 믿고 있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혹스럽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렀다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의사가 환자의 변을 고치겠다고 나섰는데도 시간이 갈수록 병세가 잡히기는커녕 거꾸로 병 소가 전신으로 번져 위 독 상태에까지 이르렀다면 애초부터 진단이 잘못됐거나 아니면 처방에 결함이 있거나 둘 중의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이제부터라도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인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 동안의 학원사태와 좌경급진세력에 대한 대책은 열에 아홉 「차단」「격리」 「근절」 같은 표피적 대응에 치중해 왔다는 느낌이다.
사태의 본질을 파고드는 해결방안이라기보다 표출된 결과만 놓고 소란을 떨다 보니「소리」에 비해 「알맹이」가 없었거나 적었던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볼일이다.
학생조직이란 그 성질상 물리적 대응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돼 있다.
대부분의 대학에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수많은 학생조직의 실체도 당국의 인식과는 큰 갭이 있었던 것 같다.
당국은 언제나 이들 조직을「상당한 구성원이 체계적 조직을 결성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고 대응하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학생조직 가운데는 그 성격이 애매하거나 구성범위·행동양상이 모호한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조직은 주축이 되는 학생이 구속이라도 되면 곧 와해돼 버리는가 하면 반대로 유인물 끝에 적당히 조직의 명칭을 적어 놓으면 즉시 새로운 운동단체가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선언문 끝에 즉흥적으로 이름을 적었다가 금방 바꾸기도 하고 버렸다가 다시 쓰는가 하면 하부조직이 없는 1인 조직도 많다. 한사람이 여러 개의 조직에 중복해 들거나 홍길동의 출몰처럼 한 명이 여러 명으로 둔감하기도 한다. 말썽 많았던 「삼민투」만해도 그렇다.
민족·민주·민중을 내용으로 하는 위원회가 있을 뿐이지 「삼민투」라고 이름 붙인 기구가 존재하는 대학은 드물다.
예컨대 서울대의 경우 민중민주와 민족자주통일을 위한 투쟁위원회, 고려대의 경우 반 외세 반 독재민주화투쟁 위원회가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로 설치돼 이른바 「삼민투」에 해당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연세대 역시 민중권익쟁취위원회· 반 외세 민족수호 투쟁위원회 등 이 있었으나「삼민투」란 치밀한 조직을 갖춘 단체는 없었다.
이처럼 학생조직의 실체파악에서 당국이 드러내고 있는 간극은 운동의 본질 파악에도 미치지 않나 싶다.
좌경급진 학생조직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의 계보나 활동전모를 밝혀 내 이를 척결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학생들이 그런 조직의 형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불만과 욕구가 무엇인지, 용공좌경으로 치닫는 학생운동의 근저에 내재한 우리 사회의 모순이 무엇인가를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가 학생운동의 온상이라면 그것이 정치제도의 비합리성이든, 경제제도의 모순이든, 교육제도의 비능률이든 간에 그것을 그대로 둔 채 결과를 다스리는 대증 요법만으로는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가 해소되지 않고 쌓이면 쌓일수록 그에 따른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만이 적절히 해소되지 못할 때,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대변해 줄 제도적 장치가 없을 때 학생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스스로 밝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과격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소외된 사회의 불만계층과 나아가 불순세력이 끼어 들 소지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오늘날 학생운동이 나타내는 굴절현상과 노동계·재야 일부에까지 확산된 급진좌경성향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단시일에 한꺼번에 해소될 성격은 아닐지 모른다.
필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도 위정자들이 우리사회의 모순된 상황을 개선하려는 겸허한 접근의 자세를 보이는 일이다. 그것은 말로만 하는 개혁이 아니라 일반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구체적 행동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
국민들은 급진좌경의 폭력을 용납하지 않듯이 사회적 모순의 은폐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당국은 우리사회의 좌경용공세력을 1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를 여기서 더 늘어나지 않게 줄여 나가 없어지게 할 것인가, 아니면 2만, 3만 명으로 늘어나게 둘 것인가는 너무도 명백한 선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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